1970년 제작 영화 '오!인천'…테렌스 영 감독, 로렌스 올리비에, 재클린 비셋 등 초호화궁합…통일교가 주도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나-야 네가 웬일이냐 돈-오랜만이다.”- 고은의 시, ‘재회’ 중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5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260만 관객을 돌파했다. 총 160억 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제작비와 함께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의 캐스팅으로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인천상륙작전’을 보며, 과거 이보다 더 큰 규모의, 더 화려한 제작진과 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동일 소재의 영화가 떠올랐다. 이에, 현대 영화사 망작을 추릴 때 항상 언급되는 전설의 영화, ‘오! 인천’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과 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007 시리즈를 영화로 옮겨 흥행에 성공했던 테렌스 영 감독
1. 007 감독, 테렌스 영이언 플레밍이 007을 창조한 아버지 같은 존재라면, 텍스트 속의 그를 우리 앞에 꺼내 놓은 어머니 역할은 테렌스 영 감독이 수행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한 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인물로 영화감독 데뷔 후엔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안정적으로 영화에 안착시키며 3편 연속 연출을 맡아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받는 등 성공적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주제로 한 영화의 연출 제안이 들어왔고, 여기에 각본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프렌치 커넥션’의 로빈 무어, 촬영엔 ‘더티해리’의 브루스 서티스 등이 합류하며 초호화 제작진이 꾸려졌다. 여기에 맥아더 역에 로렌스 올리비에, 여주인공으로는 '에어포트'의 재클린 비셋, 이 밖에도 일본의 국민배우 미후네 도시로 등이 캐스팅되며 제작 전반에 기대를 한껏 모았다. 이 믿을 수 없는(?) 라인업이 어떻게 1970년대 한국에서 가능할 수 있었을까?
2. 통일교, 문선명 ‘오! 인천’의 기획과 제작엔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이 있었다. 그는 ‘종교영화를 찍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기획에 착수, 주제를 놓고 고심하던 차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이 신의 계시를 받고 전략을 지휘했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 제작에 나섰다. 당시 영국, 일본, 미국 등 세계적인 포교활동을 통해 그 세를 넓히고 있던 통일교의 막대한 자금력과 일본인 사업가 사카구치 마츠사부로의 공동투자로 할리우드 A급 스태프 섭외가 가능했다. 여기에 주연인 맥아더 장군 역에는 그레고리 펙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제작배경에 통일교가 있음을 알고 출연을 철회했다. 그리고 뒤이어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로 캐스팅됐다.
영화 '오! 인천'에서 맥아더 장군을 연기한 로렌스 올리비에, 사진 = 영화 '오! 인천' 스틸 컷
3. 돈 가방, 로렌스 올리비에영국 배우로 셰익스피어 해석에 있어 빼어난 연출과 연기실력으로 명성을 쌓은 로렌스 올리비에는 ‘오! 인천’의 촬영을 위해 한국에 입국한 1979년 8월 26일 까지도 출연에 대해 마뜩잖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76년 ‘마라톤맨’ 촬영 이후 암 투병 중 대수술을 받느라 거액의 재산을 잃은 그로선 100만 달러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터. 이미 1977년 개봉한 영화 ‘맥아더’의 그레고리 펙과 ‘오! 인천’에서 자신이 맡을 맥아더 연기가 비교선상에 오르내릴 것 또한 자명했기에, 로렌스 올리비에 입장에서 여러모로 출연이 망설여졌을 것이다. 여기에 촬영 중 통일교에 대한 포교요청과 시나리오에 대한 회의적 시각으로 중도하차를 고려하는 그를 만류하느라 제작사가 막대한 개런티의 주급지불을 약속하며 매주 헬기로 현금을 공수해 건네주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졌는데, 이를 비롯한 미국과 한국 스태프 간의 의사소통 문제와 자연재해로 인한 세트장 유실 등의 사건사고로 영화는 제작 기간 내내 난항을 겪는다.
'오! 인천'의 여주인공이었던 재클린 비셋은 지연되는 촬영일정으로 인해 총 165만 달러의 출연료를 챙기기도 했다. 그녀는 이후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 "난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돈이 아니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스스로 영화에 대해 악평을 쏟아낸 바 있다.
4. 5년, 4,410만 달러 앞서 언급한대로 한국 스태프와 테렌스 영 감독의 스태프진 간 의사소통 문제는 제작과정에서 여러 실수를 야기했는데, 인천 앞바다 상륙작전 장면에서 배가 감독 지시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전체 촬영을 다시 하는 과정에서 200만 달러가 소모됐는가 하면, 상륙작전의 성공 후 인천에 입성하는 맥아더와 환영하는 군중 장면에서는 인파가 적다는 이유로 재촬영, 이전 촬영분량과 편집이 안 된다는 이유로 또 한 번 재촬영을 진행, 총 3회차, 3백만 달러를 낭비하는 등 어이없는 실수가 이어졌다. 또한, 태풍으로 인해 서해안 인근에 조성한 대규모 세트장이 풍비박산 났는가 하면, 북한 인민군과의 교전 장면 촬영 중 탱크에 엑스트라 1명이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막대한 제작비만큼이나 사건·사고 또한 끊이지 않은 ‘오! 인천’은 이후 완성까지 제작 기간만 5년, 비용은 4,410만 달러가 소요됐다. 물론 이 금액은 공식 기록일 뿐, 당시 엑스트라나 스태프에게 지급된 비용은 대부분 현금이었기 때문에 집계되지 않은 제작비 또한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오! 인천'의 국내 상영은 윤 보살의 죽음과 북미 흥행 실패로 결국 유야무야 되었다.
5. 칸 영화제, 원효로 윤 보살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오! 인천’은 1982년 제35회 칸 영화제에 공식 출품, 현지에서 혹평세례를 받았다. 제작에 통일교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일관성 없는 연기와 연출로 출연 배우들조차 외면하는 굴욕을 당하자 제작사는 당초 140분 분량의 영화를 서둘러 재편집, 105분 버전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봉했으나, 5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이에 한국 개봉을 통해 반전을 노렸을 수도 있으나 영화진흥위원회 확인 결과 ‘오! 인천’은 국내에서 상영된 적이 없었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건이 얽혀있는데, 영화 제작 당시 통일교, 일본 사업가와 함께 거금을 투자한 국내 투자자가 있었다. 점술과 사업수완으로 수십 억대 자산을 모은 원효로 윤보살, 윤경화는 ‘오! 인천’의 국내 상영권 소유자로 미국 개봉 전인 1981년 국내 개봉을 추진하던 중 피살당했다. 양녀와 가정부가 함께 살해당한 윤보살 피살사건은 미제사건으로 종결되었고, 그녀가 직계가족이 없이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탓에 유산상속 과정에서 ‘오! 인천’의 국내 상영권은 까마득히 잊혀졌다. 여기에 이듬해 영화가 북미 개봉에서 혹평을 들은 터라 자연스럽게 국내 상영 논의는 없던 일처럼 사라졌다.
Adria Julia, 'Notes on the Missing Oh', 사진 = Project Arts Centre Dublin
6. 영화의 행방잊혀진 영화 ‘오! 인천’은 골든 라즈베리상 최다수상 영화로 가끔 가십에 오르내리다 지난 2009년, 스페인 출신의 비디오 아트 작가 아드리아 줄리아의 작품 ‘잃어버린 '오'에 대한 짧은 노트 (Notes on the Missing Oh)’를 통해 현재 미국 필름보관업체에 오리지널 필름과 관련 자료가 보관되어있는 사실이 확인됐으나, 실질적 소유권자인 통일교 측에선 아직 공식적인 소유권 행사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통일교 소유의 미국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됐던 버전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 뒤늦게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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