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세제 개편, 소득 재분배에 초점 맞춰야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최근 듣기 거북한 말이 마구 돌아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수저 계급론'으로 젊은이들의 사회 출발점이 서로 다른 점을 꼬집고 있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누구는 처음부터 출발해야 하고(흙 수저), 누구는 90m 내지 80m 앞에서 출발하는(금·은 수저) 꼴을 용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느 고위 공직자의 '한국인의 99%는 계층 상승의 능력과 노력이 없어서 동물처럼 취급돼야 한다'는 이른바 '개·돼지론'까지 가세했다. 수저 계급론이나 개·돼지론이나 우리 사회에서 신분제가 고착화하는 현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쥔 자의 수가 종전에는 상위 20%이었지만 점차 낮아져서 현재는 1%이고, 머지않아 0.1%로 낮아진다고 한다. 즉,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해져서 세상은 0.1 대 99.9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칼 마르크스는 1867년 저서 자본론에서 자본가들은 속성상 부를 무한대로 축적하므로 소득 불평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들이 가진 것 모두를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반듯한 빌딩 하나 가지고 있으면 그 임대 수입만으로 몇 대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그 빌딩에 세든 자들은 임대료 내기에도 힘이 부친다.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 빌딩을 국가 소유로 하고 공짜 또는 싼 임대료만 받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 보면 빌딩 관리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점은 그도 간과했다. 이게 공산주의의 큰 약점이다. 그래도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점은 열심히 돈을 벌 수 있는 자본가들은 벌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두되, 그들이 얻은 이익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징수해서 그렇지 못한 자들과 공유하는 점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보자. 서울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는 3가지 계급이 존재한다. 좌석은 불편하지만 싼값에 가는 이코노믹 클래스, 좀 편하게 가지만 요금이 비싼 비즈니스 클래스, 그리고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하고 누워서 가는 퍼스트 클래스가 있다. 그렇게 신분이 나뉘어져도 승객의 불만은 없다. 돈만 지불하면 언제든지 퍼스트 클래스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퍼스트 클래스로 가는데 진입 장벽이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식 사회주의는 사회적 약자도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정도의 복지 혜택을 준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퍼스트 클래스 타는 자가 기부금을 많이 내어서 가난한 자가 비행기 표를 살 수 있게 도와준다. 반면 공산주의는 모두 줄서서 순서대로 타라고 해놓곤, 공산당원들이 그 타는 순서를 독점한 끝에 망했다. 우리나라는? 부자들이 기부금을 많이 낼까. 복지 재원은? 아직까지는 부정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세법이 소득 재분배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즉, 소득이 많은 곳에 세금 부담을 증가시켜야 한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개인 보다는 법인의 소득이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법인세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 슈퍼리치나 대자산가도 마찬가지다. 소득 재분배 역할이 빠진 세제개편안은 '단무지 없는 김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세제개편안을 짜면서 신용카드 소득공제나 둘째 아이에 대한 소득공제 조정 등 세법을 땜질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현 정부 들어 이전 정부보다 훨씬 많은 국가부채가 쌓이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정부가 국회에 갖고 온 세제개편안에 단무지가 빠졌다면 국회가 심의과정에서 적절한 양의 단무지를 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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