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단弄단]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의 전쟁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미국 해병대의 전쟁 영웅인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이 퇴역 후 쓴 이 책은 미국이 저질렀던 침략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전쟁은 사기다. 항상 그래왔다. 전쟁은 아마도 가장 오래되고, 손쉽게 가장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사악한 것이다... 전쟁은 이익은 달러로 계산되고, 비용은 목숨으로 치러지는 아마도 유일한 돈벌이일 것이다. 전쟁은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희생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짐작하겠지만, 희생을 치르는 것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백성들이고 이익을 얻는 자는 보통 대기업과 부자들이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전쟁마저 드물어진 요즘, 전쟁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놀랍게도 '오락(entertainment)'인 것 같다. 피 흘리는 전쟁 대신에 황홀한 이야기와 화려한 무대가 펼쳐진다. 오늘날의 오락이 본질적으로 전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전쟁이 부정한 돈벌이라면, 오락은 질 나쁜 장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비용은 백성들의 목숨으로 치러지지만, 오락의 비용은 그들의 영혼으로 치러진다. 전쟁이 극소수를 위해 대다수가 희생하는 것이라면, 오락은 대다수가 바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훌륭한 오락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이거나 비상업적인 경우가 많다.  오락은 비유컨대 합법적인 '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마약 말이다. 오락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마약이 오락인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는 데 있고, 마약인 것은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 오락의 정체는 '유사 현실'이지만, 후유증은 '현실 혼동'이다.  재벌2세 남자가 옥탑 방 여자를 사랑했던 드라마 때문에 부동산중개업소에 "풍광 좋은 옥탑 방 하나 소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는 그나마 애교라도 있다. 연쇄 살인을 저지른 여고생이 그 살인의 쾌감에 대해 말하는 영화를 본 또래 여고생이 그것을 따라했다는 소식은 끔찍하기만 하다.  '뽕 중의 뽕'은 사랑이다. 드라마들은 사랑타령에 날이 새고 대중음악은 온통 러브러브다. 여기저기에 사랑이 넘쳐나는 것은 누군가 사랑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하며 약을 파는 자들의 두목은 당연히 거대 미디어다. 그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뽕'을 주로 파는 것은 그 '뽕'이 가장 잘 팔리기 때문이다.  현실에 치이고 외로움에 치를 떠는 사람들은 '뽕'이 '만병통치약'인 줄 알고 사기도 하고,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인구매약'이기 때문에 주저 없이 먹는다. 그러면서 자신을 잊고, 현실을 보지 못하고, 미래를 방치한다.  오늘도 티브이에서는 백마 탄 왕자가 옥탑 방으로 올라오고, 극장에서는 깡통 옷을 입은 영웅이 악당을 응징하며, 이어폰에서는 사랑가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영혼을 저당 잡히는 조건으로 마약에 취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히로뽕을 파는 마약상만 잡아들일 것이 아니라 정신을 좀 먹는 마약을 파는 오락상의 주리도 틀어야 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주리를 들고 있는 것은 당연히 백성들이다.  윤순환 (주)러브레터 대표, 수필집 '그때, 나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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