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의 기적 뒤엔…막판 좌절한 팀도 많았는데

축구 전쟁 속 불운의 약체 팀들 스토리

[아시아경제 권성회 수습기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컵의 주인공은 결국 레스터시티로 정해졌다. 시즌 개막 전 영국의 배팅업체 ‘윌리엄 힐’은 레스터시티의 우승 배당률을 5000 대 1로 책정했다. 0.02%의 확률인 것이다. 그러나 레스터시티는 강했다. 리그 첫 6경기를 3승 3무로 시작한 레스터시티는 시즌 중반부터 1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현재 리그 36경기 중 패배는 단 세 번뿐이다. 리그 최소 실점 3위를 자랑하는 탄탄한 수비력에 빠른 역습을 구사하는 전술이 유효했다. 공격포인트 기준으로 리그 공동 1위인 제이미 바디(22골 6도움)와 리야드 마레즈(17골 11도움) 콤비의 활약이 빛났지만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다. 그는 2014년 그리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가 당시 FIFA 랭킹 187위였던 페로제도에게 0-1로 패하는 등 수모를 겪으면서 4개월 만에 경질된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2015년 여름 레스터시티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의 분위기는 역시 반신반의였다. 라니에리 감독이 만들어낸 레스터시티는 단순한 ‘도깨비 팀’이 아니었다. 걸출한 스타 선수는 없지만 각 선수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팀 조직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선수들은 오로지 팀의 승리를 위해 싸웠다. 다음 시즌 리그는 물론 우승팀 자격으로 진출하게 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선전도 기대되는 이유다.레스터시티의 우승과 같이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종종 등장한다. ‘하위 전력’으로 평가받는 팀이 세간의 평가를 뒤엎고 선전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레스터시티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음 소개할 것은 ‘약체’로 평가받던 팀들의 힘겨운 우승 도전기이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준우승에 관한 이야기다.▲칼레 RUFC(1999-2000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
칼레 RUFC는 당시 프랑스 4부 리그 팀이었다. 칼레의 선수들은 초등학교 교사, 회사원, 정원사 등으로 아마추어 신분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실력 좋은’ 조기축구회 수준인 것이다.이런 칼레가 프랑스 FA컵이라 할 수 있는 쿠프 드 프랑스에서 상위 리그 팀들을 상대로 연일 선전을 펼쳤다. 당시 2부 리그에 소속된 릴 OSC, AS 칸 등을 꺾으며 단숨에 8강에 올랐다. 칼레의 선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8강전에서 1부 리그 팀인 RC 스트라스부르를 2-1로 물리치더니 4강전에선 1부 리그 팀 지롱 드 보르도를 연장 접전 끝에 3-1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인구 8만의 칼레 시민들은 기적을 꿈꿨다. 4부 리그 팀이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82년만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 감독이 칼레 선수단을 찾아 일일 감독을 자처하기도 했다. 상대는 전통의 강호 FC 낭트였다.결승전 장소인 ‘스타드 드 프랑스’엔 7만 9000명의 관중이 가득 들어찼다. 전반전만 하더라도 승리의 여신은 칼레의 손을 들어주는 듯 했다. 전반 34분 슈퍼마켓 창고에서 일하는 제롬 듀티트르가 첫 득점을 성공시켰다. 칼레 시민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뿐 아니라 프랑스 전 국민이 환호했다. 그러나 ‘칼레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후반 5분 만에 낭트의 동점골이 터졌고, 경기 종료 직전에는 페널티킥을 얻어낸 낭트가 역전골을 터트렸다. 칼레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엔 실패했지만 당시 칼레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는 여전히 ‘스포츠정신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다.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칼레의 기적’은 약팀들이 일으키는 ‘반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인천 유나이티드(2005 K리그 준우승)
2004년부터 K리그에 참가한 인천 유나이티드는 평범한 팀이었다. 2004년 전기리그 2승 3무 7패로 13팀 중 꼴찌를 기록했다. 후기리그에선 4승 5무 3패로 선전해 4위를 기록했지만 통합성적은 승점 26점으로 12위를 기록했다. 2004년 후기리그부터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던 장외룡 감독이 2005년 시즌 정식 감독을 맡았다. 인천은 전기리그에서 7승 3무 2패라는 좋은 성적을 내 선두와 승점 1점차로 2위를 거뒀다. 리그 참가 2년 만에 얻었다고 하기엔 놀라운 성과였다.후기리그에서도 인천의 돌풍은 거셌다. 6승 3무 3패, 5위라는 성적으로 전기리그에는 못 미쳤지만 전후기 통합 승점 45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인천이 부산 아이파크를 2-0으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할 때만 해도 창단 2년 만의 우승은 눈앞에 가까이 있는 듯 했다. 선수들이 똘똘 뭉쳐 모든 경기를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탁월한 용병술과 전술 운용으로 장외룡 감독의 지도력 또한 언론의 집중을 받았다. 결승전 상대는 통합 3위를 기록한 울산 현대였다. 당시 울산엔 득점왕 마차도와 ‘사기 캐릭’ 이천수가 버티고 있었다. 결승 첫 경기를 홈에서 치르게 된 인천은 3만 5000명 관중의 응원을 받으면서 경기장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전반 13분 마차도에 선제골을 허용하면서 끌려다니던 인천은 이천수의 해트트릭 활약과 마차도의 추가골을 앞세운 울산에 1-5로 패배하고 말았다. 허망한 결과였다. 경기 종료 직전 라돈치치의 만회골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울산에서 열린 결승 2차전은 인천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큰 점수 차로 이겨야 우승컵을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1차전의 패배를 뒤집을 순 없었다. 2차전을 2-1 승리로 마무리했지만 통합 스코어 3-6으로 울산에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그러나 인천이 선사한 ‘감동의 여운’은 오래 갔다. 장외룡 감독은 그 해 K리그 감독상을 받으며 비우승팀 최초의 감독상을 받는 이변을 일으켰다. 또한 2005년 인천 선수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이 2006년 개봉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브래드퍼드 시티 AFC(2012-13 캐피털원컵 준우승)
브래드퍼드 시티 AFC가 캐피털원컵에서 선전하고 준우승을 차지할 땐 잉글랜드 4부 리그에 있는 팀이었다. 4부 리그까지 프로 축구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칼레와 같은 입장이라고 볼 순 없지만 90여 팀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적이었다.대회 스폰서 이름을 따서 현재는 캐피털원컵으로 불리고 있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 컵은 프리미어리그 팀부터 4부 리그인 리그2 팀들까지 모든 프로 팀들이 참여하는 대회다.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 UEFA 유로파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승승장구하던 브래드퍼드는 대회 16강전에서 당시 1부 리그 소속이던 위건 애슬레틱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며 파란을 예고했다. 이어 8강에선 매 시즌 프리미어리그 ‘4강 전력’을 자랑하는 아스널을 만났다. 아스널 역시 방심하지 않고 주전급 선수들을 선발로 출전시켰다. 브래드퍼드는 전반 15분 선취골을 터트리며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아스널 역시 저력이 있었다. 후반 종료 직전 수비수 베르마엘렌이 동점골을 터트렸다. 승리의 몫은 브래드퍼드에게 돌아갔다. 연장 혈투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동점골의 주인공인 베르마엘렌이 마지막에 실축하며 3-2로 브래드퍼드가 승리했다.브래드퍼드의 4강 상대는 역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톤 빌라였다. 아스톤 빌라는 32강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4-2로 꺾는 등 승승장구하던 팀이었다. 그러나 브래드퍼드는 공격적으로 나섰다. 4강 1차전 홈경기에서 3-1로 승리한 브래드퍼드는 2차전 원정경기에서 1-2로 패배했지만 골득실 원칙에 의해 결승전에 진출했다.브래드퍼드와 함께 결승전에 올라온 팀은 프리미어리그의 스완지 시티였다. 스완지에는 한국선수 기성용도 버티고 있었다. ‘제2의 칼레의 기적’을 꿈꾸던 브래드퍼드 스토리의 결말은 칼레의 마지막과 같았다. 기세등등하게 스완지와 자웅을 겨뤘지만 결국 상위 리그 팀의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 결과는 0-5 쓰라린 패배. 우승컵은 물론 유럽대회 출전권까지 내심 기대했던 브래드퍼드로선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차를 극복하고 결승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브래드퍼드 구단과 선수들의 모습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겐 감동 그 자체였다. 사진=각 구단 홈페이지권성회 수습기자 stree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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