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七情]'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그 시절 그때 힐링 광고

[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 광고칠정(七情)은 광고를 둘러싼 얘기들을 해설기사나 칼럼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바야흐로 힐링의 시대다. 즐비한 멘토들의 수만큼 격언들도 쏟아진다. 삶의 고통이 커지는 만큼 고통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도 점점 커진다.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광고가 이를 놓칠 리 없다. 'IMF사태' 이후 고용불안과 피로의 일상화 속에 사람들을 위로하는 광고들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콘셉트로 동시대 사람들을 위로하던 광고들을 모아 봤다.

▲ 1998년 스피드 011광고

◆원조 힐링광고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스피드 011 = 광고는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의 수많은 강점을 드러내야 한다. 대부분 광고에서 이미지와 글자가 쉼없이 나타난다. 그러나 '스피드 011' 광고는 거의 10초간 대나무를 걷는 두 사람의 모습만을 따라간다. 도시에서는 듣기 힘든 대나무 숲의 시원한 소리도 귀를 붙잡는다. 30초 가운데 19초가 지나서야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고, 나비가 날아간다. 배우 한석규씨는 멋쩍은 듯이 동행하던 스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한석규의 음성이 깔리며 광고는 끝이 난다. 전남 담양의 숲에서 촬영된 이 광고는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큰 반향을 불렀다. 광고가 나왔던 1998년은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가정이 붕괴되던 시기였다. '잔인한 IMF 가정이 무너진다' '중산층 급속 붕괴…노숙자 무리 생겨' 같은 뉴스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광고는 마음을 나누던 동료가 다음날 회사를 떠나는 광경들을 수없이 봐야 했던 국민을 위로했다.

▲박카스 '풀려라 피로' 광고

◆당신의 뭔가는 누군가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다 박카스 풀려라 4800만=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교수가 일컬었던 것처럼 한국사회는 피로로 점철된 사회다. 수험생부터 직장인까지 피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때문에 피로회복제 광고에 나오는 대상은 한국 사회 누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박카스 광고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다. 박카스 '풀려라 편'은 술에 취한 직장인이 포장마차에서 "사표를…내자 내자"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알고보니 그 화면은 TV 속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 화면을 본 백수는 "부럽다. 취직을 해야 사표를 쓰지" 라고 하며 드러눕는다. 이 장면을 TV로 본 이등병이 "부럽다. 누워서 TV를 보고"라고 생각한다. 이등병이 나오는 TV 화면을 최초에 나왔던 직장인이 보며 말한다. "부럽다. 저땐 그래도 제대하면 끝이었는데…"이 광고는 피곤하고 고통스럽기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 사는 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라는 카피는 피로한 모든 이의 삶을 위로한다. 최초 장면에 나왔던 직장인의 동료는 박카스를 건네 주며 "다 풀어"라고 위로한다. 피로를 없어지게 한다는 뜻의 풀다를 감정을 누그러뜨린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두산 사람이 미래다 광고

◆청년에 대한 위로…결과적으로 '청년팔이' 광고 '두산 사람이 미래다'='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저)를 비롯해 청년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들은 최근 꾸준히 나왔다. 힐링 콘텐츠는 청춘의 고통과 비례해 쏟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힐링 콘텐츠의 범람 속에 나온 두산 '사람이 미래다' 광고는 힘들었던 청춘들의 심금을 울렸다. 청년 한 명을 클로즈업하는 단순한 형식이지만 메시지는 강렬했던 광고다. 광고의 화자는 단군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세대에게 노력하라고 훈계하지 않는다. 대신'이미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 그대로 멋지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면 '잉여' 라고 자신을 비하해야 했던 청춘들에게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만큼 강렬한 위로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미래'라던 기업은 그 광고를 보고 들어온 20대들을 희망퇴직으로 몰아넣었다. 두산은 일반 노조원에게 손해배상 가압류를 건 최초의 기업이기도 하다. 청년에 대한 위로로 쌓았던 기업 이미지는, 그게 '청년팔이'였다는 대중들의 깨달음 속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광고도 최소한의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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