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문제의 '전설' 실린 단행본 출고 정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공동 주최로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신 씨가 의도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비판했다.이명원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는 토론회 발제에서 신경숙 씨의 1996년 작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 대한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표절 의혹이 제기된 1999년작 '딸기밭' 표절 논란과 관련해서도 "작가적 기본윤리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개탄할 만한 상황에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이 교수는 "2000년대 문학의 실패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문단의 패거리화와 권력화, 이에 따른 비평적 심의기준의 붕괴와 독자의 신뢰 상실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표절 사태에 대해 "희망 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돼야 한다.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건 신경숙 소설 속의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문학'"이라고 개탄했다.시인 심보선 씨는 "타인의 글을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폐하면서 자신의 글로 둔갑시키는 게 표절이라면, 문제가 된 신 씨의 소설은 표절"이라며 "문학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표절 사건으로 민낯을 드러낸 건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다. 출판상업주의로 인해 '창작과 비평'이냐 ‘문학동네’냐, ‘문학과지성’이냐 등 출판사 소속이 작가의 정체성이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오 교수는 "한국의 대형출판사들이 연합해 '한국 대표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신경숙 신화'의 실체"라며 표절 사건이 비평의 무기력, 비평의 위기와 무능의 상황에서 비롯됐다며 비평가들의 진지한 성찰을 요구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한국문학의 존재조건을 바꿔 놓은 문학사적 사건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한편 출판사 창비는 신경숙 씨의 단편 ‘전설’이 실린 단행본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를 정지하겠다고 23일 발표했다. 염종선 창비 편집이사는 “문제가 된 ‘전설’을 빼겠다는 신씨의 발언을 존중한다”며 “오늘부터 이 책 출고를 정지하고, 이미 유통된 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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