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유암코 사장
연말에 후쿠오카 공항에 내렸다. 날씨가 우중충하다. 여행 가이드는 마치 일본 경제와 분위기가 흡사하다며 촌평을 하더니 몇 마디 덧붙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민당 연합이 지난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잘해서 그런 건 아니란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찍어준 것뿐이란다. 중간 목적지인 구마모토 성까지 가는 데에는 버스로 약 두 시간이 걸린다. 시간을 때우려는지 가이드는 습관처럼 마이크를 잡는다. 일본의 개요에 대해 짚고 나더니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로 흥미를 돋우었다. 구마모토 성은 일본의 3대 명성 중 하나로 꼽힌다. 지어진 지는 약 400년이 지났다. 당시 성주는 가토 기요마사.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대표장수다. 끝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 편에 섰던 인물로 한때는 50만석이 넘는 영지를 지녔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위세였다. 목숨처럼 섬기던 주군이 사망하자 가문은 2대째에 끊겼다. 도쿠가와 막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판에 박힌 설명이 지루해질 무렵 차츰 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뒤쪽에서 뜬금없는 질문에 가이드의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일본은 살 만하느냐고 물어본 모양이다. 일본은 물가가 멈춘 지 오래돼서 그럭저럭 살 만해요. 잃어버린 20년 덕분이지요. 일본 경제에 대한 가이드의 소감 피력이 내 귀를 솔깃하게 했다. 그래도 일본이 장기불황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중소기업과 개인기업들이 강하기 때문이라고들 해요. 중소기업 중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술을 가진 업체들도 많아요. 가령 깨알 같은 은단에 은박을 입히는 기술만 해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가졌어요. 대를 이어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개인기업들도 대기업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가죠. 소수의 재벌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와는 달라요. 분명히 경제를 따로 전공하지 않았을 가이드의 입에서 나온 관전평이다. 십수년간 양국을 오간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일본에는 재벌 대기업일지라도 2세나 3세가 경영하는 기업은 거의 없어요. 기업이 커지면 복잡해지잖아요? 창업주의 자손들은 경영에 잘 나서질 않아요. 전문경영인들이 도맡아 하죠. 아마 창업 1세가 살아있는 경우도 기껏해야 교세라의 이나모리 카츠오 정도예요. 이것도 한국과는 다르죠? 우리 경제도 어느새 불황의 터널을 8년째 접어들고 있다. 리먼 사태 이후부터 경제위기를 계산하면 그렇다. 소위 대(大)디플레의 시기라고들 한다. 이를 견뎌낼 수 있는 나라로 손꼽는 독일과 대만을 보면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들이다. 한 국가가 절대빈곤을 벗어나는 데 있어 선택과 집중은 매우 효율적인 개발전략일 수 있다. 우리는 소수의 재벌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거시경제지표를 책임지며 성장을 견인해왔다. 그래서인지 오너 가계의 승계와 증여에도 우리 경제는 꽤나 너그러운 편이었다. 세무당국의 관점에선 일감 몰아주기나 유가증권 헐값 인수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보일지 모르겠다. 결과는 검증과 견제가 부족한 3세의 경영참여가 어느새 유행이 됐다. 모 항공사의 스캔들이 능력이 아닌 가정교육만의 문제라면 정말 다행이겠다. 이런 풍토에서 자란 대기업들은 요즘 길거리 상권까지 잠식한다고 비난을 듣는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은 하나같이 갑을구조에 매몰된다. 전장에서 돌아온 가토 기요마사는 축조와 치수 등 인프라 구축에 힘썼다. 구마모토 현에서는 지금도 대단한 인물로 칭송한다. 민초들에게 두루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성패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집중리스크가 크다. 위기에 취약하다. 이런 산업 포트폴리오는 제대로 고쳐나가지 않으면 국가든 일개 가문이든 나락을 피할 수 없다. 정부나 우리 사회가 대기업의 탐욕만 비난해선 풀릴 문제가 아니다.이성규 유암코 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