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백수광부의 부활,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또 다른 세상으로 피안과 구원을 찾아 나섰던 백수광부가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부활했다. 2000여년 전, 백수광부는 아내의 애절한 통곡을 외면하고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다.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그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임을 어찌 할꼬." 그의 아내도 노래를 부르며 광부의 뒤를 따랐다. 백수광부는 죽으면서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 놓았다."왜 그는 강을 건너려 했을까" "강 건너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최초의 고대 시가인 '공무도하가'다. 그러나 본래 이 시는 공후와 인이라는 악기를 타며 부른 노래다. 노랫속 백수광부는 현실을 거부한 채 목숨마저 무릅쓰고 새 세상을 찾으러 떠난 혁명가다. 그런 백수광부의 영혼과 육체를 깨워 우리곁으로 불러온 이는 이윤택 연출가와 안숙선 명창이다. 두 거장은 '공무도하가'를 모티브로 새로운 음악극 '공무도하- 저 물을 건너지 마오'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에는 류형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전국 4개 국악원 등도 참여해 국악인의 협업정신이 빛난다. 현재 막바지에 이른 '공무도하'를 본 관람객들은 찬사와 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공연은 신비롭고도 환상적이라며 열광한다.  이 작품은 기획단계부터 연극과 판소리ㆍ경기소리ㆍ서도소리ㆍ정가ㆍ궁중제례악ㆍ연례악ㆍ창작음악 등 정악과 민속악, 창작악, 사물놀이까지 총동원, 우리 예술 형식으로 기획해 관심을 끌었다. 공무도하의 성공은 오늘날 공연기획가들이 크게 주목할 부분이다. 연말이면 라이선스 작품들이 'LP판' 돌리 듯 고정 레퍼토리가 된 현실에서 공무도하라는 민족 서사를 현대적으로 해석, 우리 예술 형식으로 공연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해야할 만하다.  우리 관객은 서구의 예술 형식에 지치고, 피로감을 호소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정작 문화예술인들은 관객의 요구를 외면한 채 외국 라이선스 작에 집착해 왔다. 게다가 스토리마저 수천년 서구사회가 반복해온 그리스ㆍ로마신화의 표준적 상상력을 강요하듯 주입하기에 급급했다. 지금도 공연시장에서 뮤지컬, 콘서트 등 각 장르별로 라이선스 작이 판친다. 도무지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대해 공연예술계의 반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공무도하 공연을 계기로, 우리에게 때묻지 않고 낡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예술자원이 백수광부와 함께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일례로 아직도 무궁무진한 신화, 설화가 묻혀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터부시하고 배척하고 저급하게 여겼던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 세계는 순수하고 생태적이며 인간미가 넘치는 '날 것'의 자원들이 광맥처럼 퍼져 있다. 공무도하를 새로 불러온 것처럼 우리 고유의 놀이정신을 회복하는 것은 비단 문화 정체성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모방한 서구의 예술 형식과 스토리로는 결코 서구를 따라갈 수 없다.  아직 발현되지 않은 우리 정신과 에너지를 발굴하는 것이 바로 공연예술계가 갖고 있는 숙제다. 강 너머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는지는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봐야 아는 것처럼 강 이후의 세계를 꿈꾼 백수광부의 정신은 100년짜리 서양 공연 이식사가 우리 공연사이기를 거부한다. 그런 면에서 현실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 서사야말로 우리가 가꾸고 지킬 공연의 원형이다. 따라서 공무도하는 서구와 전혀 다른 형식과 상상력의 세계에 도전한, 우리만의 아름다운 시도다. 크든 작든 간에 우리 정신의 숲을 이룰 때 바로 그곳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의 무대가 된다. 여기서 차라리 만용이라도 좋다. 우리가 더 이상 서구 예술형식이나 숭배하고, 찬양해서는 결코 우리 예술의 꽃을 한껏 피울 수는 없다.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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