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아침]'2천만 국민을 남의 노예로 만들었으니..'

을사늑약 체결

[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1905년 오늘.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입니다. 나라가 사실상 통째로 일본에 넘어갔습니다. 일제는 압박과 협박, 내부의 약한 고리에 대한 은밀한 회유, 외교적 전략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마침내 힘으로 대한제국을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따라서 이는 분명히 조약(條約)이 아니라 늑약(勒約)입니다. 국가간의 평등한 계약이 아니라 국제법을 무시하고 억지로 맺었으니 늑약이지요. 글자 그대로 우리의 어굴엔 굴레가 씌워진 것입니다. 그날 덕수궁 중명전에는 무장한 일본군이 배치돼 있었고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고종은 끝내 일본의 압박을 거부하지만 오적들은 찬성의사를 밝힙니다. 그들 누구도 고종으로부터 조약체결을 위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외교로 풀어보려던 고종의 노력은 헤이그에서 이준 열사의 순국으로 끝나고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해 실권을 장악한 뒤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해버렸습니다.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이 쓴 20 일자 사설은 이렇습니다. "오호라. 개돼지 새끼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 대신이라는 작자들이 이익을 추구하고, 위협에 겁을 먹어 나라를 파는 도적이 되었으니,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사를 남에게 바치고 이천만 국민을 남의 노예로 만들었으니……"그 후 최익현, 신돌석, 민종식…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수많은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납니다. 그들 누구도 당시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잘 모릅니다. 또 ‘오적(五賊)’들이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 우리는 여전히 잘 모릅니다.그로부터 5년 뒤 일제는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고 마침내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하고 맙니다. 이 자리에도 오적 중의 한 사람인 이완용이 있었습니다.이 과정의 주적 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응칠(안중근)의사. 우리는 아직 그의 무덤에 시신조차 안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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