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김혜민 기자]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박근혜정부의 금융업 청사진'이라며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금융비전)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동양 사태, 대규모 정보유출 등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자 당국자들이 사고 수습에 매달리느라 금융비전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신용정보보호 등의 문제까지 국회에서 공전하며 금융비전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말 '3대 미션과 9대 목표'를 담은 금융비전을 발표했다. 금융업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당국자들이 6개월 공들인 결과물이었다. 금융위는 금융의 파이 확대, 창조금융 활성화, 시장안정과 소비자보호 등 크게 3가지 미션과 이를 바탕으로 한 9대 목표를 제시하며 차질없는 이행을 다짐했다. 발표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금 우리 금융권의 현실을 냉철하게 돌아볼 때"라며 "지금부터 차분히 준비한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역사를 새로 써 갈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발표 후 5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진척된 사항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하다. 9대 목표 가운데 사모펀드의 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자본시장의 역동성 제고' 항목 외에는 구체적인 추진계획 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심지어 금융위가 올 상반기까지 마무리하겠다던 '금융규제 개선'과 '금융감독 역량 강화' 방안은 이제서야 초안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장기적인 과제들이 대부분이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진행해 나가야 하지만, 당초 계획했던 추진 속도에 비하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비전의 추진 속도가 더딘 가장 큰 이유는 연이어 터진 대형 금융사고들 때문이다. 사고 수습으로 금융비전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금융비전 발표 직후엔 앞서 터진 동양사태의 뒷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후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과 은행원의 국민주택채권 위조 사건이 잇따라 불거졌고 급기야 올초에는 사상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져 한동안 당국자들의 혼을 빼놨다. 관계자들이 "후속 대책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대응하기도 역부족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이로 인한 국정조사까지 진행돼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당국 수장들까지 국회에 불려다니며 의원들의 질의와 질타에 고개숙여야 했다. 지난달 초 '개인정보 유출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내놓기까지 꼬박 석달 동안 금융위 전체가 정보유출 사건에 얽매어야 했다.금융비전의 발목을 잡는데는 정치권도 한몫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소비자보호를 위해 추진중인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과 관련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지만 여야의 정쟁으로 올스톱 상태다. 금융위 주무 국·과장들은 여야 의원들과 접촉하면서 현안 법안의 의견 조율을 하느라 사무실을 비우는 날이 잦다. 금융위의 한 사무관급 직원은 "윗분들이 국회에 가 있어 온종일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다"며 "결재를 못받아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금융비전은 올 하반기가 돼야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이번 국회가 마무리되면 그동안 미뤄졌던 업무들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올 하반기부터는 금융비전과 관련한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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