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있는 프랑스 여행 - Medoc
지천이 포도밭인 메독지역에서 수확을 앞둔 포도나무<br />
[보르도(프랑스)=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우리의 관심은 맛이 좋을까 안좋을까가 아닙니다. 아주 맛있느냐 아니면 덜 맛있느냐죠"프랑스 메독(Medoc)에서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또 라퐁로쉐(Chateau Lafon Rochet) 소유주이자 상속자인 바질 떼스롱씨는 2013년도 빈티지에 대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이곳 와인은 노란색 라벨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아주 맛있냐 덜 맛있냐의 차이= 와인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한 연도다. 1년 간 포도나무가 쬐는 일조량이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적절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수확할 즈음에 충분히 태양이 비춰지고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 지난달 말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일주일 내내 태양이 내리쬐었다. 그 전 주까지만해도 날씨가 좋지 않아 울상이던 샤또(Chateau) 소유주와 관계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전에도 비가 많이 오고 날씨도 좋지 않아 와인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포도 수확을 앞둔 9월에 갑자기 기온이 높아지고 바람도 많이 불어 포도가 잘 익을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곤 했다고 한다.
수확철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포도 수확의 모습. 사진은 오메독지역의 롤랑드비의 포도수확 모습
◆여의도 20배 면적의 메독,10일부터 늑장수확=메독은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Bordeaux) 내의 와인산지다. 메독산 와인이 미국, 칠레 등 신대륙의 와인과 크게 차별화되고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히는 건 바로 '떼루아르'다. '떼루아르'는 포도원의 특성을 부여하는 자연적 요인으로 기후와 토양, 하부토, 수리학(水理學), 관급과 노하우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어느 한 가지 의미로는 정의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똑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의 떼루아르가 다르면 와인이 달라진다. 서쪽으로는 대서양,동쪽으로는 지롱드강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과 토양은 메독와인을 명품으로 빚어낸다.메독의 포도 재배면적은 1만6500㏊(165 ㎢)에 이른다. 여의도면적(8.4㎢)의 20배다. 전체 보르도 레드와인 포도 재배면적의 15%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와인을 만드는 샤또는 600여개, 브랜드는 1500여개에 달한다. 연간 유통되는 와인은 1억병가량이다. 통상 포도나무는 1m간격으로 심어져 있고 나무 2그루당 와인 1명 가량이 생산된다. 1ha당 평균 5000병 정도 나온다. ◆2013년도 빈티지 수확 2,3주에 마무리, 2015년에 시판=샤또마다 포도수확은 다르다. ha당 평균 1,2명이 수확하며 300ha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은 2,3주가 걸린다. 수확 시즌에는 대부분 외부에서 인력을 구해다 쓴다.
과거에는 유럽지역의 집시들이 수확 시즌이면 대거 메독지역에서 수확일을 했지만 최근에는 각 샤또마다 와인을 배우는 국내외 학생이나 와인에 관심 있는 내외국인들을 쓴다. 소규모 와이너리들은 대부분 가족과 소수의 직원들이 전담한다. 수확은 기계로 하는 곳도 있지만 고급와인을 생산하거나 소규모 포도밭을 갖고 있는 와이너리들은 수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수확한 포도들은 발효와 숙성을 포함해 대략 12∼24개월의 시간을 거쳐 2015년께부터 세상에 선보인다. 최근 메독지역에서도 저가의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일부 샤또의 경우는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지 않고 발효를 하는 양조통에 오크칩(작은 조각)이나 직사각형 형태의 오크보드로 숙성한다. 오크통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오크향을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티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프랑스산 오크통(225L)의 경우 평균 500유로(한화 75만원)인데 오크우드는 이보다 훨씬 저렴하다. 오크우드는 10L에서 20L당 1개를 넣는다. 1개 오크통을 기준으로 할 때 오크우드 10여개면 충분하다. 오크우드를 사용하는 한 샤또 관계자는 "오크통은 가격도 비싸고 3,4년마다 새로 교체해야 돼 중저가 와인을 대량 생산하는 우리에게는 부담이 크다"면서 "10유로 미만의 메독와인을 많은 이들에게 공급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고지엿의 그랑 크뤼 끌라쎄 3등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또 디쌍의 샤또 전경. 크뤼즈 가문이 1945년부터 경영해 오고 있으며 건축물은 그 역사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주변 조경은 프랑스에서 몇 손가락에 든다.
◆명성유지 위해 시설투자 눈길=명품와인의 명성은 단순히 자연에만 의지할 수 없다. 메독지역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저마다의 숙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시설투자다. 레드와인의 생산과정을 요약하면 포도수확-선별작업-압착-발효-숙성(오크통 혹은 다른통)-병입의 순이다. 규모가 큰 샤또 가운데는 수 백만 유로를 들여 와인용 압착기, 광학선별기, 위성안내수확시스템 등을 투자한 곳이 많다. 프랑스 와인 명가인 로칠드(영어로는 로스차일드)가문의 바롱 에드몽 로칠드가 소유한 샤또 클라르끄(Chateau Clarke)도 그 중 하나다. 상급 와인을 생산하는 이 샤또를 1973년 인수한 로칠드가문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첫 빈티지 와인인 1987년과 1979년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여러 와인 수입사를 통해 선보인 바 있어 인지도가 높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 계열의 와인 전체를 관장하는 얀 부쉬월터 와인메이커는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 수확부터 선별, 포도밭 관리, 스텐리스 통을 이용한 침용 등 모든 것을 로칠드의 기술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샤또 그뤼오 라로즈(그랑쿠뤼 클라쎄 2등급)의 경우는 최첨단 쿨링시스템을 갖춘 양조통 10개를 새로 설치했다. 1개당 3만유로(한화 4500만원)으로 기존 10개를 합하면 60만유로가 투자됐다.소유주 가문 출신의 니콜라 시노케 총괄이사는 "포도를 차갑게 식혀 알콜발효를 지연시키는 동시에 아로마향을 풍부하게 하는 시스템으로, 보르도에서는 슈페리어 지역 샤또 페르튀스와 이 곳 두 군데에만 있다"고 말했다. 샤또 마르끼 드 떼르므(그랑크뤼 클라쎄 4등급)의 경우는 과감한 마케팅으로 메독지역에서 화제다. 이 곳은 현재 소유주인 쎄네클로즈 가문의 상속녀인 줄리나 쎄네끌로즈씨가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으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과 홍보를 펼치고 있다. 특히 샤또 안에 와인숙성고와 함께 와인시음과 연회가 가능한 모던 양식의 건물이 눈길을 끈다. 자체적으로 국내외 VIP 초청 행사를 할 때도 있고 외부인은 와인케이터링도 가능하다. 국내 모 그룹의 의뢰로 VIP 행사를 치른 경험도 있다. 전통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할머니와 아들 부부, 손자 3대가 경영하는 샤또 고댕이 대표적인 가족경영 샤또다. 연간 생산량이 8만병가량이고 90%는 유통업체(네고시앙), 10%는 샤또에서 직접 판매한다. 메독지역에서 최고의 품질을 생산하는 뽀이약 지역에 있지만 10유로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맛볼수 있다. ◆中은 이곳서도 큰손..."성숙한 韓시장"러브콜=중국이 전 세계 와인시장에서도 큰 손으로 떠올르고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최근 중국의 큰손들이 메독지역의 와이너리를 직접 사들여 소유주가 되거나 이 지역의 고급와인을 대거 구매하려는 손길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말로 포도장인으로 불리는 크뤼 아르티장인 샤또 라 뻬르의 소유쥬 르네 라비예씨(왼쪽)이 이웃 샤또 소유주와 함께 올해 수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랑크뤼 클라세 2등급인 샤또 그뤼오 라로즈의 니콜라 시노케 총괄이사는 "중국에서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기존 고객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수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르도에서 한국은 와인시장이 성숙하고 와인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현지 관계자들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급성장했다가 최근 주춤한 한국 와인시장에 다시 노크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메독와인협회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줄리엥 비뇰씨는 "특급 와인인 그랑크뤼 클라쎄만이 메독와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합리적인 가격 대비 고품질의 와인을 찾는 이들에게 메독와인은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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