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경고한 루비니, 요즘은 '예언'하는 족족 헛다리 "글로벌 경제는 정부 부채와 고유가, 실업으로 인해 2011년부터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재정 적자와 채권 수익률 급등, 유가 상승, 기업 순이익 감소, 고용 상황 악화가 합쳐져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2009년 7월에 내놓은 전망이다. 퍼펙트 스톰은 태풍이 또다른 태풍을 만나 파괴력이 더욱 커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 프라임 모기지 론)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를 예견한 루비니 교수의 이 전망에 경제주체들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루비니 교수는 그 후에도 '퍼펙트 스톰'에 비유할 만큼 엄청난 경기 악화가 임박했다며 거듭 목청을 높였다. 2011년 6월에는 그 요인으로 미국 재정위기, 중국 경제성장 둔화, 유럽 채무 재조정, 일본 경기침체를 들었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보 경기침체'를 '이란 무력충돌'이라는 요인으로 바꿔 같은 결과를 예상했다. ◆퍼펙트 스톰 예언 불발=루비니 교수가 예언한 것처럼 퍼펙트 스톰이 세계 경제를 덮쳤나? 그의 예측력을 검증하려면 비유적이고 상대적인 표현인 퍼펙트 스톰보다는 수치로 확인 가능한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 우선 글로벌 경제는,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더블 딥은 피했다. 더블 딥은 경기가 회복되는 듯하다가 처음 닥친 침체 못지 않은 불황에 처하는 것을 뜻한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미국 경제는 루비니 교수의 걱정과 달리 다시 가라앉지 않고 2% 안팎 성장세를 지속중이다. 더블 딥의 요인으로 거론된 유가 급등도 나타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두바이유 기준 원유 가격은 2009년 배럴당 61달러에서 2010년 77달러, 2011년에는 100달러선으로 올랐지만, 이는 2008년 90달러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지, 급등으로 보기는 어렵다. 루비니 교수는 또 2009년에 미국 실업률이 11%까지 치솟는다고 예상했다. 미국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를 기록한 이후 더 높아지지 않았고 지난해 9월 7%대인 7.8%로 떨어지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순풍을 불어넣은 이후 7%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4월에는 7.5%로 더 낮아졌다. 경기예측에는 막대한 돈이 걸린다. 회복되리라는 전망을 믿는 사람은 예컨대 주식을 매수한다. 더블 딥을 걱정하면 위험자산 비중을 축호한 뒤 때를 기다린다. 루비니 교수의 비관론을 따른 사람들은 미국 경기 회복세를 타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주식시장이 제공한 기회를 놓쳤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해 5월 "연말에 S&P500 지수가 1300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P500 지수는 지난해 말 1426을 기록하며 그의 예측을 10% 웃돌았다. 올해에도 계속 상승해 최근에는 1660대에서 오르내린다. ◆핫 핸드를 믿지 말라=과거 예측을 적중시킨 사람의 전망을 둘러싼 관심은 '핫 핸드 편향'의 사례로 풀이된다. 한 농구 경기에서 슛을 연달아 성공시킨 선수를 핫 핸드라고 부른다. 그 선수가 그 경기에서 계속 슛을 잘 넣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핫 핸드 편향이다. 그러나 통계로 검증해본 결과 이 기대는 충족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핫 핸드 편향은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최근 높은 수익률을 올린 펀드매니저가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리라고 보는 것을 뜻한다. 이 기대 역시 확률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핫 핸드 편향은 경제 예측에서도 발생한다. 사람들은 과거 예측이 들어맞은 인물이 내놓은 예상은 적중할 확률을 높게 잡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경제 변수는 본질적으로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결과를 몇 번 적중시켰다고 해서 그 인물이 다음에도 맞힐 확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하물며 단 한번 큰 침체를 미리 말했을 뿐인 사람의 후속 예언에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 더구나 루비니 교수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2006년 전망은 대단한 신통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강연에서 주택시장 거품이 터질 위험을 진단했고 그렇게 되면 금융 시장에 파장이 미치게 된다고 경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지목한 다른 요인은 빗나갔다. 그는 주택거품 붕괴 외에 급등한 에너지 가격과 금리가 경제에 가하던 부담이 마침내 경기를 끌어내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요인과 현상을 혼동한 분석과 전망이다. 에너지 가격과 금리의 상승은 경기 호조가 반영된 현상이지, 경기 하강을 일으킬 요인은 아니다. 이 글은 루비니 교수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종의 '후일담'을 덧붙이면, 루비니 교수는 비관론 일변도에서 탈피해, 5월초 "미국 증시가 앞으로 1~2년 더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퍼펙트 스톰이 닥친다는 기존의 음울한 전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얘기다. 증시가 더 상승한다는 그의 발언은 몇 년 동안 빗나간 예측을 만회하기 위한 '전향'이 아닐까. ◆경제도 결국 유비무환=루비니 교수의 패착에서 배워야 할 점은 한 번 맞게 된 예측을 내놓은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계속 첫 예언의 틀 속에서 미래를 점친다. 그러다보면 변화의 조짐을 놓치거나 간과하게 된다. 후속 전망이 틀릴 공산이 커진다. 더 경계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최고 경제전문가'라며 경제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역량을 보여주겠노라고 자랑하는 부류다. 그런 '재야의 고수'들에게 귀 기울이기 전에 그들이 왜 재야에 머무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활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향후 경기를 가늠해본 뒤 그 전망에 따라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그 전망은 아무리 고심하고 자문을 구한다 한들 정확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래는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언제 경기가 어떻게 된다는 구체적인 전망에 따라 투자하고 사업을 벌이는 데에는 보수적인 접근이 좋다. 그러면서 호황기에는 불황에 대비해 여력을 축적하고 불황기에는 호황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경제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순환한다는 본질에서는 다른 세상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순환의 양상과 주기는 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믿을 일이 아니다.백우진 정경부장 cobalt1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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