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경주 최부자의 정보관리

'만석 이상의 재산은 모으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들 때는 남의 전답을 사지 마라', '주위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리나라 대표적 명문가의 하나인 경부 최부자의 가훈이다. 부자는 3대도 계속되기 어렵다는데 무려 12대 400년을 만석꾼 집안으로 이어왔다니 유럽의 메디치가문 등 그 어떤 명문가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특히, 일제 시대 독립자금을 대고 나중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서 지금의 후손은 평범한 중산층으로 남게 했던 그들의 고귀한 정신은 존경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가풍을 이룰 수 있게 만든 가훈인 육훈(六訓)은 지금도 후대인들의 귀감이 된다. 특히 필자는 육훈 중 하나인 '과객은 후하게 대접하라'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 경부 최부자 가문의 미래를 보는 눈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단순한 여행자에서부터 과거를 치르러 가는 선비,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자까지…. 대접의 차이야 있었겠지만 지나가는 길손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밥과 때로는 잠자리까지 제공했다는 것은 선의의 목적 그 이상이 보인다. 바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조선시대, 상대적으로 수도 한양과 떨어진 경주지역에서 세상의 풍문과 소문을 듣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과객이다. 밥과 숙소를 공짜로 준다는데 과객들은 온 성의를 다해 자기가 아는 것, 들은 것, 본 것을 풀어 놓았으리라. 경주 최부자는 그들을 통해 세상과 소통의 끈을 이어놓은 것이다.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입이 닳도록 얘기해도 모자란다. 작은 정보 하나가 기업의 미래를 바꾸기도 한다. 일례로 직원이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제품화해서 성공한 제약회사가 있다. 비아그라 복제약을 개발하던 모 회사의 한 임원은 동창회에서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쉽게 복용할 수 있는 비아그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는다. 이에 착안해 출시한 제품이 입천장에 붙일 수 있는 필름형태의 약. 연매출 30억원 수준이던 이 약은 제형을 바꾼 이후 연간 300억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정보의 중요성을 아는 기업들은 정보관리, 그 이전에 정보수집에 열을 올린다. 요즘에야 언론, 업계소식지, 정기보고서 등 수많은 정보들이 있지만 이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이다. 남들은 모르는 정말 중요한 정보는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보 수집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직원들이 돼야 한다. 그들이 고객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 업계에서 취합한 소식, 모임에서 얻은 우연한 사실들이 보석 같은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먼저 내가 들은 작은 이야기가 회사를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평상시 정보관리의 중요성을 직원 교육을 통해 강조해야 하는 이유다. 그 다음에는 관점의 공유. 무턱대고 아무 것이나 수집하는 것이 아닌 회사에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공유돼야 한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1% 낮추는 것이 목표라는 국내 한 균일가숍의 직원들은 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찾는데 열심이다. 그 결과 이 회사가 상품을 공급받는 거래처는 전 세계 2000여개가 넘는다. 마지막으로는 수집과 보고의 간편성. 아무리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이를 건건이 수십페이지짜리 문서로 격식 갖춰 보고해야 한다면 동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짧은 e메일이나, 한 페이지짜리로 보고해도 상관없도록 절차 자체를 단순화해야 한다.  가훈에 정해 놓을 정도로 정보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경주 최부자의 만석꾼 비결, 지금의 우리 기업들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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