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갈등인가, 계급 갈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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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노르웨이의 테러리스트 브레이브빅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21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작년 7월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로 77명을 무차별 살해한 자신의 행위를 이슬람과 다문화주의에 항거한 ‘의거’라고 규정하는 확신범답게, 그는 판사가 선고문을 읽는 내내 미소를 지었고 판결이 끝나자 오른손을 들어 앞으로 쭉 뻗는 ‘하일 히틀러’ 동작을 해보였다. 또, 재판 후에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판결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항소한다면 이 법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므로 항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법정에서 검사는 피고인이 정신적인 문제로 이 행위에 대한 책임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보호감호를 요구했지만, 변호인은 피고인의 정신이 온전하며 책임능력이 있으니 유죄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단일문화를 가진 한국이야말로 완벽한 사회”라고 추켜세우며,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은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꼽아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대 여론은 더 이상 우리에게도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서울역을 비롯해 인파가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으레 ‘반외국인’ 또는 ‘반다문화’를 주장하는 단체 회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며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외국인 범죄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을 볼 수 있다.인터넷에서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하다. ‘외국인범죄척결연대’ ‘다문화정책반대’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 등 다수의 인터넷카페가 개설되어 있으며 그 중의 한 곳은 1만 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자랑한다. 이들이 게시판에 주로 올리는 내용은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 관련 보도, 정부의 다문화정책으로 한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실태 고발, 외국인과의 결혼 피해 사례가 주를 이룬다. 중국 동포 오원춘의 토막살인 사건과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비례대표 선출은 이러한 반대 여론을 한층 더 가열시킨 기폭제로 작용했다. 사실 자기와는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 거부감은 어느 정도 본능적이다. ‘미국 경제를 주무르는 실세’로 통하는 유태인들조차도 20세기 내내 사회적, 정치적인 온갖 포섭 과정을 통해 ‘백인’이라는 지위를 가까스로 성취해냈다. 그 전까지 샘 족의 일원인 유태인은 공공연히 백인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유태인들만이 아니다. 이전의 이탈리아계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미국 주류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19세기에 아일랜드 인은 미국이나 잉글랜드에서는 ‘흑인’으로 취급되었다. 이탈리아 인 역시 미국에서는 백인과 흑인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인종쯤으로 여겼다. 사실 인종주의는 토박이가 뜨내기나 드난살이를 보는 시선, 박힌 돌이 굴러온 돌을 보며 갖는 뜨악한 감정에 밑뿌리를 두고 있다. 행색이 초라한 뜨내기나 집도 절도 없이 남의집살이를 하는 드난살이를 고운 눈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가난이 가까이해서는 안 될 질병이자 인격적인 결함으로까지 치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말해 무엇하랴. 인종주의는 변형된 빈부갈등의 혐의를 갖고 있다. 이것이 인종주의가 인종주의로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컨텐츠 총괄국장 구승준이코노믹 리뷰 구승준 기자 <ⓒ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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