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위스 계좌 신고액 14배 급증했지만

국세청이 발표한 해외 금융계좌 신고 결과 중 스위스 계좌 부분이 묘하다. 한국인 개인이 스위스 계좌에 보유 중이라고 신고한 금액이 지난해 73억원에서 올해 1003억원으로 14배 급증했다. 이는 스위스 비밀계좌에 관한 정보를 한국 국세청이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개정된 한ㆍ스위스 조세조약이 지난달 25일 발효된 것과 관계가 있다. 조세조약 발효를 앞두고 자진신고제가 해외 은닉자금 합법화 절차로 이용된 것이다. 신고액은 급증했으나 신고자 수는 지난해나 올해나 한 자릿수라고 한다. 1인당 평균 100억원 이상 거액을 스위스 계좌에 넣어둔 셈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국세청이 납세자의 비밀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며 입을 다물고 있어 알아낼 도리가 없다. 개정 한ㆍ스위스 조세조약 발효는 오래 전 예고됐으므로 그 사이 스위스 계좌의 돈을 다른 데로 빼돌리거나 차명계좌로 옮길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신고 의무는 '현금과 상장주식 평가액의 합계가 연중 하루라도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로 한정돼 있다. 10억원 이하이거나 채권ㆍ펀드ㆍ파생상품에 투자한 자금은 신고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스위스 계좌의 한국인 자금 전체에서 이번에 신고된 1003억원은 빙산의 일각에도 못 미칠 것이다. 지난해 2월 스위스 국세청은 한국주식에 투자한 스위스 계좌에서 발생한 배당수익의 5%(58억원)를 양국 배당세 차액이라며 한국 국세청에 보내왔다. 역산하면 스위스 계좌에서 한국주식에 투자된 금액만 1조원 가까이 된다. 따라서 스위스 계좌 신고의무 이행률은 10%에는 물론 1%에도 미달하는지도 모른다. 스위스 한 나라만 해도 이런데, 전 세계 조세피난처를 떠도는 미신고 한국인 돈은 얼마나 많을까.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는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간 돈이 888조원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그런데 스위스 계좌를 포함해 신고된 해외 금융계좌 총액은 18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물론 그 돈이 다 불법자금은 아니다.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상 필요하여 개설된 해외계좌도 많다. 그러나 그 중 상당 부분은 역외탈세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세청은 역외탈세와 전면전을 벌인다는 각오로 해외 금융계좌 감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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