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사라지는 우리 동네 '책대여점'

콘텐츠진흥원에서는 전국 2000~3000개 남아있다고 추정

한 도서대여점의 모습. 최근 인기있는 책은 만화책은 '원피스', '블리치' 등이며 환타지 소설은 '묵향', '비뢰도' 등이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한때 골목마다 있던 DVD·만화 대여점(이하 대여점)들이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남아있는 가게들도 폐업 수순을 밟는 곳이 대부분이다. DVD 대여 부문은 '인터넷 다운로드'에 밀려 수익을 포기한지 오래고, 만화 및 소설책 대여 부문은 스마트폰, 태블릿PC, 전자책 등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만화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10일 "8년전 대여점을 시작할 때도 주변에서 사양산업이라고 많이 만류했다"며 "한달 매출이 150만원 나오면 신간 구입비로 50만~60만원을 쓰고 나머지로 전기세며 각종 세금을 내면 남는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익이 안나니까 신간서적을 조금밖에 못 갖다 놓게 되고, 그러다보니 손님들 발길이 떨어지고, 그러면 다시 수익이 안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도서대여점, 10년새 3분의 1로 줄어 =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사는 대학생 김형민(24)씨는 적어도 일주일에 무협지나 게임소설은 2~3권씩, 만화책은 5~6권씩 빌리는 A대여점 단골 손님이다. 그러다 한 달 전 대여점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곧 가게가 폐업하니 선금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김 씨는 "아직 '로열페이트(게임판타지 장편소설)' 연재도 안끝났는데 대여점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앞으로 어디서 빌려야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성북구 보문동 일대에도 지난달 B대여점이 문을 닫았다. 올 초 대여료를 300원에서 400원으로 올렸지만 매출은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고민 끝에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재 이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동물병원이 확장해 들어섰다. B대여점 단골인 문 모(30)씨는 "책방 주인 아저씨가 손님이 없어 미아삼거리 쪽으로 가게를 옮긴다고 했다"며 "근처에 하나밖에 없는 책방이 사라져 더 이상 만화책을 빌려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간한 '2012 콘텐츠산업 하반기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도서대여점의 수는 2000~3000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활성화됐던 만화 대여점을 통한 유통과 소비는 현재 미약한 수준"이며 "대부분 폐업을 준비하고 있어 신간 유통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성기였던 1990년대 중반, 도서대여점 수는 전국 1만2000여개에 달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6000여개로 줄었다가 다시 10년만에 3분의 1 수준이 됐다. 한 폐업대행업체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 폐업 처분을 하는 가게가 많았다. 열흘에 한 가게 꼴로 폐업을 도와줬다"며 "10년 전에는 한 동네에 20~30개씩 대여점이 밀집해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져 거의 고사직전"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스마트폰에 밀려 수익 악화 = 대여점이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여점들이 비디오/DVD 등 영상물과 만화책·소설책 등 도서물을 겸해서 빌려준다. 그러나 인터넷 다운로드가 성행하고 IPTV 등 TV를 통해서 영화를 손쉽게 볼 수 있게 되면서 DVD 대여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출판물도 전자책,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통해 무료 콘텐츠가 활성화되면서 손님이 점차 줄게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2 1분기 콘텐츠 구매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화콘텐츠 이용자의 49%가 온라인을 통해 만화를 보고 있으며 대여만화는 20.9%에 그쳤다. 휴대폰으로 만화를 보는 이용자도 크게 늘어 20.8%를 차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여점을 찾는 고객들이 있다. 만화책을 좋아하거나 무협지, 판타지 소설 등을 주로 찾는 마니아들이다. 이들로 인해 전국 3000개의 대여점들이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서울 삼선동의 한 대여점 주인은 "대여점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책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읽는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더 발전된 전자책, 스마트폰이 나와도 이런 '손맛'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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