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입장에서 보면 조세피난처는 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세금이 없다 보니 자본가는 그곳에서 돈을 굴리기 원한다. 세금만큼 수익이 더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금운용뿐만 아니라 기업도 그곳에 회사를 설립하고 싶어 한다. 정부 간섭이나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주로 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는 지적산업이나 금융회사, 지주회사 등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해적의 소굴이었던 카리브 해안 지역이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다. 프랑스 르몽드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810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는 540억달러, 구글은 401억달러의 자금을 미국 이외 조세피난처에 두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돈도 1990~ 2010년 7790억달러가 조세피난처로 흘러들어왔다고 영국 조세정의 네트워크가 발표했다. 물론 이들 자금 모두가 탈세를 목적으로 하진 않을 것이다. 대부분 정당한 해외투자의 일환이겠지만 일부는 탈세 목적이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에 있던 주소를 조세피난처로 옮기거나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를 만들어놓고 이 회사를 매개로 국내 소득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법으로 금지할 수도 없다. 헌법에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며 시장경제주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조세의 공평부담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세피난처 이용 자체에 대한 제한은 못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국내 세법에 규정된 세금을 제대로 납부토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보자. 첫째, 소득세 과세 기준을 현행 거주 기준에서 국적 기준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조세피난처에 주소가 있는 대한민국 국적자의 모든 소득에 대해 한국 과세 관청이 과세권을 가진다. 따라서 조세피난처에 고의로 주소를 두는 행위는 의미가 없어진다. 미국은 시민권을 기준으로 소득세를 부과한다. 미국에서 세금을 내기 싫어 시민권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자에 대해서도 시민권을 포기한 해와 그로부터 10년간 소득세 납세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둘째, 기업의 경우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해외 자회사의 지분 중 일정 기준 이상을 내국인이 소유하고 있다면 해당 기업의 이익을 다시 한국 세법에 따라 신고토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조세회피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미국은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기업의 지분 중 미국인 지분이 85% 이상이면 해당 기업의 이익 중 미국인 지분에 해당하는 소득은 미국에서 다시 과세한다. 셋째, 납세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회사와 거래한 경우 그 거래가 정당함에 대한 입증 책임을 납세자에게 부여하고 미흡하면 그 차액에 대해 과세하면 된다. 이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거래정보를 우리나라 과세 관청이 얻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프랑스가 이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기업이나 거주자를 도와 세금을 회피하도록 부추긴 변호사ㆍ회계사 등에 대해서는 해외탈세방조범으로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한 자도 처벌하는 세상이다. 사고가 날 경우 해당 운전자만 다치는 게 아니라 운전자 및 동승자와 전혀 상관없는 제3자도 치명적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호사ㆍ회계사의 정당한 조력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세금은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공동의 재산이다. 이를 해외로 빼돌리는 데 협력한 자를 처벌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