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기능소화기 만들고 못 팔은 중소기업 사장을 도운 건

[인터뷰] 강윤범 푸르네존 대표, 기계연구원 신기술창업보육센터 입주 뒤 고민 해결…8개국과 상담

강윤범 푸르네존 대표가 개발한 휴대용소화기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주치의가 따로 없다.”강윤범(49) 푸르네존 대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지난 밤 11시가 넘도록 신제품의 기술문제를 상담해주다 돌아간 한국기계연구원(원장 최태인)의 김병인 박사 생각 때문이다. “내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국가 과학자가 나와 회사를 위해 헌신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나? 우리 기술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개발과 양산, 심지어 마케팅까지 조언해 주는데.”푸르네존은 올 2월 기계연 내 신기술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다. 이곳에 들어가기까지 강 대표는 10년간 휴대용칫솔, 자동쓰레기압축기, 초음파정수장치, 음성칩셋 저장장치 같은 많은 생활제품을 시장에 내놨다. 휴 대용칫솔은 치약과 칫솔을 하나로 보관할 수 있게 해 비교적 간단한 아이디어상품이지만 수출되는 등 해마다 적잖은 매출을 올리는 효자상품이다.나머지 제품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그 중 강 대표가 가장 아쉬워하는 발명품은 자동쓰레기압축장치다. 쓰레기압축률이 95%나 돼 처리비용도 줄고 환경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제품이었다. 강 대표는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 빌딩이나 다중시설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판매로도 꽤 이어졌다”고 말한다.

강 대표와 기계연구원의 푸르넷존 멘토인 김병인(왼쪽) 박사.

자신감을 얻은 강 대표는 기능을 추가하고 용량도 키우며 제품라인업을 다양화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반짝했던 초기의 시장반응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제품개발에만 몰두하며 지나친 게 있었던 것이다. “청소나 시설관리는 대부분 외주로 해결했다. 실사용자인 용역사는 굳이 쓰레기봉투비용을 아끼거나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그 뒤 강 대표가 새롭게 주목한 건 소화기. 주택화재 건수가 한해 5만 건에 이르고 차량화재도 자주 나는 상황에서 사용이 쉽고 편한 초기 화재진압용 소화기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기존의 소화기는 구석에 방치되거나 무겁고 안전핀을 뽑아야하는 등 위급상황에서 성인남성도 사용이 쉽잖은 문제점이 있었다. 밤이나 화재에 따른 연기 속에선 위치 파악이 쉽지 않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강 대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을 컨셉으로 새 소화기 개발에 들어갔다. 권총처럼 방아쇠만 당기면 소화액이 뿜어져나오고 발광다이오드(LED)랜턴과 경보기를 달아 야간이나 연기 속에서 길을 찾고 위치를 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바닥엔 자석받침대를 달아 차량지붕에 올려놓으면 비상등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기존 소화기가 이산화탄소(CO) 가루를 써서 환경에 안 좋은 점을 고려해 에어로졸 강화약제도 적용했다. 3년 만에 완성한 시제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 성공 가능성을 점쳤다. 제품만 제대로 만들면 판로는 문제없을 듯 보였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강 대표는 “본격적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노즐의 공차계산을 못하고 금형을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김 대표는 속이 타들어 갔다. 문제해결을 고민하다 한국기계연구원 신기술창업보육센터에서 기술개발과 마케팅까지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주지원서를 썼다.강 대표는 입주심사를 받던 그 때의 심경을 이렇게 얘기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나라 최고엔지니어들 도움을 받아 제대로 된 다기능소화기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가 개발한 제품 중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있는 휴대용칫솔.

입주 뒤 강 대표는 “다기능소화기 개발에 가장 큰 힘이 된 건 우리 회사만을 맡아 도와주는 보육닥터제도”라고 말했다. 센터가 제공하는 ‘1인1사 보육닥터’는 기계연의 전문인력이 입주기업의 기술개발을 맨투맨으로 집중지원하는 제도다. 푸르네존을 맡은 이는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실 김병인 박사다. 김 박사 지원이 시작되자 강 대표가 골머리를 앓던 문제들은 금세 하나 둘씩 실마리가 잡혔다. 김 박사의 지원정도는 단순한 기술상담이나 조언에 그치지 않았다. 강 대표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도움을 받았다. 김 박사는 문제가 됐던 금형의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자기 일처럼 챙겼다”고 설명했다.올 9월부터 생산을 시작하는 푸르네존의 ‘다기능소화기’는 외국에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강 대표는 시제품을 갖고 시장개척단의 일원으로 해외에 다녀온 뒤 “8개국의 소방전문회사와 구입상담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이영철 기자 panpanyz@<ⓒ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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