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리더學]유비의 칼은 겸손이요, 방패는 신뢰였다

三國志經營-8.관우·장비·조운 이끈 감성리더십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가난한 시골 청년에서 촉한의 1대 황제에 오르기까지. 유비의 리더십은 오늘날 각광받는 '감성 리더십'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객관적으로 유비는 동시대 조조보다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입신의 기초를 갖고 있기는커녕 오늘날로 치자면 돈도 학벌도 평균이하인 시골 협객에 불과했다. 문무에 있어서도 조조를 비롯한 당대 영웅들에 비할 바 못됐다. 그런 그가 영웅으로, 리더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정의 약속한 '도원결의' 평생 지켜-인재발탁 위해서라면 버선발 마중-신뢰하면 전권위임으로 충성 유도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유비에 대해 "넓은 견식과 강한 의지, 풍부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고 확신이 서는 인물에게는 자신을 낮추기를 서슴지 않았다. 고조의 품격을 지니고 있고 영웅의 그릇이었다"고 평가했다. 후흑학(厚黑學)에서 이종오는 "유비의 특징은 참으로 드문 낯가죽의 두꺼움에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전혀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다"면서도 난세에 큰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를 유비의 이 같은 '후(厚:낯가죽이 두꺼움)'로 정의했다. 유비는 맨주먹으로 관우, 장비, 조운(조자룡) 등과 같은 용장과 제갈량(제갈공명)이라는 최고의 책사를 얻었다. 무(武)에 능하지 않았던 그의 부족함을 채워준 이가 관우와 장비였고 당대 최고의 지략가로 꼽힌 공명의 활약은 두말할 바 없다. 수많은 영웅들이 그에게 애정과 경의를 표했다. 이는 유비가 '권모'보다 '정의'를 표했던 이였기 때문이다. 유비의 '정의'는 곧 인간적 매력의 원천이었다. ◆원대한 비전과 한결같은 결의=유비가 낙양에서 학문을 닦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무렵 한조(漢朝)는 각지에서 황건적 토벌 의용군을 모집했다. 이 때 뜻을 같이 한 세 젊은이가 복숭아 아래서 "국가와 만민 구제를 위해 전력을 하고자 한다"며 의형제의 연을 맺는데 바로 이것이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도원결의(桃園結義)'다.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면 사람들은 초심을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비는 전란과 매관매직, 부패로 시끄러운 난세에서도 꿈을 품고 그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유비는 한 왕조의 부흥과 함께 태평성대를 꿈꿨다.  그가 민중의 마음을 알고 위로한 덕장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젊은 날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한결같이 소중히 했던 모습 때문이다. 난세 가운데서도 빼어난 인재와 지원군을 수하에 거느릴 수 있었던 까닭도 이로 풀이된다.  일례로 지역상인들은 그가 의용군으로 나선다하자 군자금과 병참을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장사꾼처럼 셈이 빠른 이들은 없다. 당시 기록은 짧으나 그가 쌓아온 인간적 매력과 신뢰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인재를 구하고 신뢰했다=유비는 인재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이였다. 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간 삼고초려는 대표적 일화다. 조조처럼 타고난 지략이 뛰어나지 않았던 유비가 그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인재를 구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비는 자신의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또 전권을 위임했다. 참모들은 그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충심을 다했다.  관우와 장비는 대표적인 유비의 사람이다. 건안 5년(200년) 유비가 조조에게 패했을 때 관우는 조조에게 잡혀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귀순을 종용 받았다. 그러나 관우는 조조의 적인 원소의 부하 안량을 베어 조조에 보답한 다음 유비에게로 돌아갔다.  삼국지에는 장비가 홀로 조조의 대군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건안 13년(208년) 그 유명한 장판교 전투다. 유비 군이 후퇴하자 조조는 직접 경비병을 이끌고 추격해 담양의 장판이라는 곳까지 따라붙었다. 이때 장비는 장판교 중앙에 서서 조조군을 향해 "나는 연인(연나라사람) 익덕 장비다. 나와 맞서 싸울 자가 있다면 나와라"고 호통을 쳤고 이에 조조의 군대는 동요하며 진격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유비의 군대가 매복해있을 것이라는 조조의 의심이 있었으나 앞서 관우가 한 말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풀이된다. 천하의 맹장이라 불린 관우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했을 당시 "내 아우 장비의 용맹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함께 가는 리더십, 부하가 아닌 동반자=같은 시기의 이야기다. 유비 군이 신야성의 주민과 함께 철퇴하는 과정에서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조군의 추격을 받게 되자 공명은 조자룡과 장비를 남기고 나머지 군대를 떠나보낸다. 전투 중 조자룡은 우물 옆에서 유비의 부인인 미부인과 아들 아두를 발견한다. 부상을 당한 미부인은 아두를 조자룡에게 맡긴 후 우물에 뛰어들었다. 조자룡은 미부인을 구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아두를 유비에게 바치지만, 유비는 외동아들을 애틋해하기는커녕 '못난 자식 때문에 나의 훌륭한 장수를 잃을 뻔 했다'며 아두를 내동댕이쳤다. 자신의 가족보다 부하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었던 셈이다. 유비는 자신의 장수들을 승리를 위한 도구로 대하지 않고 동반자로 바라봤다. 바로 앞에서 이 말을 듣는 그의 부하들이 어찌 그에게 충성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수많은 용장이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한 것은 단지 부귀영화때문이 아니다.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은 주군에 대한 믿음이다.도움말: 현대경제연구원조슬기나 기자 seu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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