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뒤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올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집 근처 선혜사에 가기로 했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당일로 고향 충청도의 한 산에 있는 절에 다녀오시기는 무리다. 해서 일 년에 한두 번 날을 잡아 한 달여 고향의 암자에서 머무시고는 한다. 대신 석가탄신일에는 집에서 가까운 주택가 사찰을 찾는 것이다. 어머니를 신심이 굳은 불자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절을 자주 찾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서 불경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집안 평안하고 자식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으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복 신도'인 셈이다. 그래도 부처님을 섬기는 마음만은 지극하다. 남편을 병으로 일찍 보내고 혼자 다섯 남매를 키운 것도, 그 자식들이 큰 탈 없이 그만저만 사는 것도 다 부처님 덕이라고 믿으시는 분이다. 그런 어머니가 요즘 꽤 심란해 하신다. 얼마 전 백양사에서 벌어진 '승려들의 음주 도박' 추문을 보고 들으신 게다. "애비야 스님들이 왜들 그러는 거냐,응? 아이구 뭔 사단이 나도 크게 난 거지. 원 무슨 그런 일이 다 있냐." 한숨을 다 쉬신다. 그렇다고 "스님은 무슨, 순 땡추들이지"라고 맞장구라도 칠라치면 "무슨 벌을 받으려고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시며 정색하신다. 하지만 어머니 듣기 고까우시겠지만 땡추가 참 많은 게 사실이다. 술과 도박, 비구니 겁탈, 룸살롱 여종업원 성매수 의혹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승려들이 차마 입 밖에 꺼내기도 민망한 행동,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삿된 말들을 예사로 해대는 게 요즘의 불교계다. 폭로에 반박, 상호 비방이 거의 막장 수준이다. 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자비로우신 부처님도 돌아앉을 일이다. 압권은 조계종 호법부장 정념스님의 말이다. 정념스님은 지난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는 "스님들에게 여러 형태의 놀이문화가 있는데 (이번 도박은) 치매 예방을 위한 심심풀이일 뿐"이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판돈도 400만~500만원 정도로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단다. 어처구니가 없다. 불교 사회에 파계적인 향락 문화가 얼마나 만연해 있고 또 그러한 패륜적 파계에 종단과 승려가 얼마나 무감각한가를 보여주는 증좌다. 사태가 커지자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15일부터 100일 동안 108배 참회정진을 시작하고 그제는 종단 차원의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개혁을 한다며 법석이다. 하지만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조계종 최고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 스님들이 쇄신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룸살롱 여종업원 성매수 의혹의 당사자인 자승 총무원장 주도로는 개혁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개혁에 착수하기도 전에 내부 분란이 인 꼴이니 앞날이 험해 보인다. 거창하게 불교 개혁을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럴 만한 식견도 없다. 다만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승려들이 먹고 입는 것조차 구걸하도록 한 뜻이 무언가를 되새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수행자의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다. 성과 속을 가르는 잣대가 무엇인가. 돈과 권력 등 속세의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왜 승려를 비구(비구니)라고 하는가. 비구는 '걸식하는 자'라는 뜻이다. 재가 불자들이 수행자를 믿고 따르는 것은 엄한 계율을 지키며 쌓아 온 그들의 도덕적 권위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기 때문이다. 부처를 팔아 번 돈으로 곡차를 마시고 향 공양을 하고 육보시를 한다면 스님을 따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어지러운 세상, 수행자들이 우바새(優婆塞ㆍ거사)와 우바이(優婆夷ㆍ보살)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외려 걱정을 끼친대서야 될 말인가. 어경선 논설위원 euhk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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