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안도현의 '저녁 무렵' 중에서

열정이 식은 뒤에도/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사라진 것들은/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잎이란 것 다 진 뒤에도/떠나야 할 길이 있고//이정표 잃은 뒤에도/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우린 사랑에 관한 한, 동화책의 해피엔딩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공주님은 왕자님을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사랑의 모든 괴로움들이 끝나고 행복 만이 가득찬 삶이 펼쳐졌을 거라고 우린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뜨겁지 않은 날들에 오는 사랑은, 그 뜨겁지 않은 영혼에 들어앉는 사랑이기에, 그가 이전에 경험한 사랑과 같은 건 아니다. 저녁 무렵의 사랑은, 한낮의 사랑에 이어진 사랑일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사랑일 수도 있다. 안도현이 말하는 저녁 무렵에는 슬픔이 많이 감돌지만, 나는 그 무렵의 사랑이 그 전의 사랑 모두를 상쇄할 수도 있는, 깊은 위로와 안락을 주는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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