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족쇄'...나 좀 살려줘

일과 사생활 구분 안돼 직원들 불만 급증, 해외는 퇴근 후 사용금지 조치도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A사의 과장 K씨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모바일메시징 서비스 때문에 잠시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같은 부서원끼리 화합을 위해 등록했던 모바일메시징 서비스가 퇴근 후에도 일을 강요하는 일종의 족쇄가 됐기 때문이다.13일 전자업계에서 모바일메시징 서비스를 업무에 활용하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이에 대한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 퇴근 후에도 일의 진행 상황을 묻거나 필요한 자료를 보내달라는 상사의 요구 때문에 일이 두 배, 세배로 늘어난 경우가 많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A사는 지난해부터 전 임직원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스마트폰 도입 후 회사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일부 부서가 모바일메시징을 업무에 활용하기 시작하자 다른 부서도 앞 다퉈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부서원간의 친목을 도입하자며 인사나 주고받다가 조금씩 업무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근무시간에는 PC에 설치된 사내 인트라넷과 PC용 메신저에 시달리고 퇴근해서는 모바일메시징 서비스로 업무가 연장되는 상황이 됐다.A사 직원 K씨는 "친목을 도모하자며 모바일메시징 서비스를 설치했지만 퇴근 후 업무지시를 내릴 때 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혹시라도 상사의 문자에 서너시간씩 대답을 하지 않으면 퇴근 후 아예 휴대폰을 쳐다보지도 않냐는 핀잔을 듣는다"고 말했다.심지어 주말에 '숙제'를 내 놓는 임원도 있다. 가족들과 느긋한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임원이 내일까지 필요한 보고서라며 업무를 재촉하는 사례까지 있다. 365일 24시간이 비상근무 체재인 셈이다. A사 직원 L씨는 "퇴근 이후 회사에서 오는 문자가 달갑지 않다"면서 "스마트폰의 경우 개인적인 사용용도가 많은데 회사 일과 결부된 업무지시로 인해 심신이 다 피로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상황이 이정도 되자 기업의 모바일메시징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퇴근 이후 업무와 관련된 문자는 보내지 않거나 아예 퇴근 이후에는 문자가 전송되지 않도록 하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선 모바일메시징으로 인한 근무강도가 높아지자 노조 차원에서 회사측에 모바일메시징 사용 제한을 요청한 사례도 있다.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 노사는 지난 12월 말 경영진과 근무 시간 외에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이용한 이메일, 메시징 발송 제한 방침에 합의했다. 회사측은 퇴근 시간 30분 후부터 다음날 근무 시작전 30분까지는 아예 블랙베리 서버를 중단하기로 했다. 일부 경영진을 제외한 직원들의 경우 퇴근시간 이후엔 휴대폰을 꺼 놓아도 된다.그동안 폭스바겐은 직원들에게 블랙베리를 지급한 뒤 퇴근시간 이후에도 수시로 업무지시를 해왔다. 직원들은 일과 개인 사생활을 구분할 수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통신회사 도이치텔레콤도 휴대폰을 이용한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 회사의 경우 퇴근 후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이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내거나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좀더 효율적으로 일하자고 스마트워크를 도입하면서 기업 내부에서 회사와 사생활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며 "모바일메시징의 경우 적절한 사용 제한 방침이 더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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