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지난 23일 남양주소방서에서 두 명의 소방관이 각각 가평과 포천으로 전보 조치됐다. 김문수 지사의 깜짝 전화에서 업무 대응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소방관들의 소속과 신분을 물었던 김 지사의 전화를 소방관들이 일방적으로 끊음으로서, 업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고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그러나 인터넷에 올라온 통화내역 녹취 파일을 들어본 기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소방관이 어떤 점에서 업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고, 어떤 면을 잘 못 응대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김 지사는 전화를 걸어 "나 김문수 도지산데…"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소방관이 "용무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소방관의 관등성명을 묻는다. 그리곤 또 "나, 김문순데…"와 "나, 도지사인데…"를 반복한다. 소방관이 수차례 전화 목적을 물었지만 끝까지 전화를 건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장난 전화로 오해받을 수 있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119 상황실은 위기 상황이나 응급상황에서 전화를 거는 곳이다. 당연히 전화를 건 목적을 얘기해야 한다. 전화를 잘 받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라도 그렇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응급 전화를 받는 상황실 소방관들이 "나 김문수 도지사인데…"라는 전화에 "아. 예. 그렇습니까? 도지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전화를 받는 것을 기대한 것일까? 김 지사의 통화 내용에선 오히려 개발독재시대의 '권위주의'가 연상된다. 응급수송에 관한 내용을 질의하기 위해서라면 행정 전화를 이용해야 한다는 소방관의 지적이 옳다.경기도 소방재난본부가 전화 응대를 잘못해 괘씸죄에 처한 두 소방관을 전보 조치한 것은 더욱 유감스럽다. 도지사가 문제를 제기하자 부랴부랴 징계성 인사를 내렸다. 윗분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 외엔 없어 보인다.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인사 조치 경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에는 "두 소방관이 대응 매뉴얼을 어겼다"고 답했다. "윤경선 소방교는 신분을 밝혔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사 조치가 징계 성격은 없다"며 말을 바꿨다. 본부 스스로도 궁색한 변명임을 인정한 것이다.영국의 윈스턴 처칠의 일화가 떠오른다. 전용차를 타고 의사당을 가던 그는 교통경찰에게 단속됐다. 처칠은 성역 없이 단속한 경찰관에 감동을 받고 경시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으니, 그 모범적인 교통경찰을 일 계급 특진시켜 주게나"라고 말하는 수상에게 경시청장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에게 딱지를 뗀 교통경찰을 일 계급 특진시켜주라는 조항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처칠은 두 번이나 망신당했지만 오히려 이를 흐뭇하게 여겼다고 한다.김 지사는 스스로 대선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여론조사에서도 미미하지만 일정정도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차기 대선후보다. 이번 사건을 일회성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김 지사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 김 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근무자들 기본이 안된거죠"라고 밝혀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28일 이 사건이 알려진 뒤 김 지사의 미니홈피에는 네티즌들의 충고가 이어졌다."도지사님 제가 한가지 알려드리자면 보통사람들은 119에 전화걸면 여기 어디고 무슨일이 났는지부터 이야기합니다""암환자이송체계를 119에 물어보시는게 상식인가요? 긴급전화가 있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세요."이런 네티즌들의 질타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김문수 도지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요즘 네티즌들은 개념 있는 정치인들을 좋아한다.이민우 기자 mw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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