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두산 임태훈에게 올 가을은 잔인하다. 불펜진은 지쳤고 승부는 늘어진다. 천근만근인 어깨. 그는 허리도 아프다. 통증에 밤잠을 설칠 정도다. 필요한 건 글러브가 아닌 휴식. 하지만 벼랑 끝으로 몰린 팀에 침대는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임태훈만의 문제는 아니다. 두산 투수진 대부분이 그러하다. 두산 한 투수는 “끝까지 던져볼 생각”이라면서도 “솔직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투수진 모두가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규시즌을 꼬박 채운 뒤 이어지는 승부. 어쩌면 체력은 처음부터 온전할 수 없었다. 이는 체력에 그치지 않는다. 당초 마무리였던 정재훈은 포스트시즌 4홈런을 허용했다. 이는 모두 승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끊이지 않는 긴장과 압박. 어느덧 그에게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경계령이 드리웠다.지칠 대로 지쳐버린 투수진. 하지만 이들은 포기를 모른다. 처음 운동을 배웠을 때부터 그랬다. 대부분 아마추어 무대서 혹사를 경험했다. 아파도 팀을 위해 글러브를 낄 줄 안다.
더그아웃은 어느덧 전례나 과학이 모습을 감췄다. 대신 감성에 지배당했다. 위기가 되면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불펜으로 이동해 몸을 푼다. 선발과 구원의 구분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두산은 3, 4차전서 연이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투수를 출전시켰다. 비운의 기록이다. 두 경기 모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9명. 이 가운데 8명은 이틀 연속 그라운드를 밟았다. 여기에는 선발 김선우도 포함돼 있다. 플레이오프 4경기를 모두 뛴 선수는 임태훈, 고창성, 레스 왈론드, 이현승 등 총 4명이다. 특히 고창성은 롯데와 준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단 하루의 휴식도 갖지 못했다. 9경기에 내리 출전했다.하지만 그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보였다. 플레이오프 1차전서 입은 타박상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대로 던질 뿐”이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김경문 감독이 다시 한 번 고창성을 마운드에 올리는 이유다. 경기 뒤 김 감독은 매번 같은 말을 했다. “투수 기용 때마다 늘 미안하다”고. 그는 잘 알고 있다. 선수들의 고충과 바닥난 체력을. 그리고 승리를 향한 의지를.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둔 김 감독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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