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금강송-곧게 뻗어 버틴 500년 세월의 금강송 향기속으로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새벽이 어둠을 밀어낸 아침, 숲길을 걷는다. 한없이 깊고 아늑한 숲이다. 길섶 산비탈의 소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밑동은 굵고 줄기는 곧으며 수피는 붉다. 춘양목, 황장목, 금강송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잘 자란 금강송은 몸매좋은 미인이다. 미인처럼 곱고 향기로운 금강송이 군락을 이룬 숲은 아름답고 싱그롭다. 헝클어진 머릿속도 맑게 헹궈줄 것 같은 상쾌함에 온몸이 찌르르 울린다. 어쩌면 이 숲길은 현세가 아닌 피안에 이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소나무라고 다 같은 소나무는 아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 따라 모양과 때깔, 기상이 다르다. 그래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자라는 금강송은 제 아무리 아름다움을 뽐내는 소나무라 하더라도 견줄 수 조차 없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는 금강송 군락지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는 곳이다. 소광리 금강송숲을 찾아 가는 길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잘 생긴 소나무를 품은 기암절벽을 굽이치는 계곡수며, 새소리, 풀벌레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16km 진입로는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멋진 하모니가 울려 퍼진다. 불영사로 향하는 길목 광천교에서 917번 지방도로를 따라 5.5km의 포장도로와 9.5km 비포장길을 30여분 달려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에 닿는다. 금강숲은 벌목의 칼날을 빗겨나간 지금 500년생 금강송 다섯 그루를 비롯해 30~200년 이상된 금강송 수만 그루가 빽빽히 들어찬 장관을 이룬다.숲은 신비롭다. 키 높이를 자랑하듯 올곧게 쭉 뻗은 솔숲 사이로 탐방로가 나 있다. 천천히 쉬며 걸으면 2시간이며 족하다.
성큼 숲에 들어서자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가 불통신호를 보낸다. 숲은 정갈하다. 가끔 다람쥐가 길동무가 되어준다.진한 솔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심호흡 두어 차례에 머리 속까지 청정수로 씻어낸 듯 상쾌한 기분이 든다.이곳을 처음 찾은 이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와∼" 하는 탄성을 지른다. 한 아름이 훨씬 넘는 굵은 적송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데다, 나무들마다 어느 한 곳도 구부러지거나 뒤틀린 데 없이 자태가 곧고 미끈하다. 이 걸출한 금강송은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데 쓰이거나 왕실 장례 때 관을 짜는 목재로 쓰였다. 얼마 전 화마에 휩쓸려 한 줌 재가 된 숭례문 복원에 쓰인 나무도 금강송이다.
숲길을 5분쯤 걷다 보니 얼핏 봐도 자태가 심상찮은 소나무 한 그루가 나온다. 무려 520년 된 '할아버지 소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옆으로 뻗은 가지는 마치 푸른 구름을 지고 있는 듯하다. 조선 성종 때 싹을 틔웠다는 이 금강송은 팔뚝 근육을 자랑하는 보디빌더 마냥 우람하다.할아버지 소나무를 지나 첫 산책로로 들어서는 다리를 지나면 초록 숲속이다.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숲에는 혈통 좋은 금강송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우뚝 우뚝 솟아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솔잎을 빗질하듯 쓸고 지나는 소리가 어우려져 천상의 화음을 선보인다.능선을 따라 조금은 가파른 길은 전망대에 닿는다. 2시간 탐방 코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다. 360도를 돌아봐도 금강송의 바다다. 젊고, 싱싱한, 붉은 빛이 선명한 나무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이곳에는 금강소나무 숲의 아픈 과거도 만날 수 있다. 6ㆍ25 때 발생한 산불로 비록 일부지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금강송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금강송 숲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이른 아침과 해질녘. 햇살이 가지 사이로 비스듬히 비치면 가뜩이나 붉은 줄기는 더욱 붉어진다.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임도와 만난다. 그 길을 따라 100여m 내려가다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선다. 다시 금강송의 연속이다.숲은 멧돼지 발자국이 선명하고 이름 모를 나무에서 떨어진 하얀 꽃잎이 점묘화를 그리고 있다. 이길은 금강송 진면목을 보여주는 '미인송'을 만날 수 있다. 하늘을 향해 찌를 듯 솟은 기상이며 대패로 깎아낸 듯 곧은 줄기며, 팔을 벌린 듯 늘어진 가지는 하늘의 기운을 품은 신목이나 다름없다. 미인송을 지난 오솔길을 따라가자 아주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이 길을 막아선다. '여러분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를 안고 기념촬영하세요'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이 나무의 높이는 무려 35m다. 가슴둘레의 지름은 120m. 어른 둘이 껴안아도 쉽지 않을 만큼 두껍다.
포토존을 지나면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다시 임도 위로 올라선다. 여전히 금강송은 주변을 빼곡이 감싸고 있다. 어느새 몸에 밴 솔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울진의 금강송 숲길은 여기뿐 아니다.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들이 넘나들던 '굽이굽이 열두 고개 길'로 이어진다. 원래 금강송 숲길은 보부상길(褓負商路)로 불렸다. 이 길은 울진에서 봉화까지의 130리(52km) 거리다. 이 중 30여 리(13.5km)가 지난 7월 20일부터 일반인들에게 문이 열렸다. 하루 80명 안팎의 인원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고개는 12고개 중 바릿재와 샛재 2개를 넘는다. 울진=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여행정보
△가는길=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풍기(또는 영주)IC를 지나 36번 국도 봉화, 울진 방면으로 가다 통고산 휴양림입구에서 3km쯤 달린 뒤 광천교에서 소광리 금강숲방면으로 간다. △볼거리=울진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라 천년 고찰 불영사다. 금강숲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비구니사찰로 대웅보전, 극락전 등이 연못을 중심으로 둘러 앉았다. 또 서면 하원리에서 근남면 행곡리까지 이어진 15km의 불영계곡은 한국은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린다. 이밖에도 덕구온천의 원탕과 월송정, 왕피천, 성류굴 등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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