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무너진 사회 교육을 다시 세우자④] '시간 남으면 게임하지 책은 왜 봐요'

책·신문 덮은 아이들

게임하는 아이들. 여가시간이 생기면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br />

[아시아경제 박지성 기자]# "집에서 신문 보는 사람?" 20명이 모여 있던 강의실에서 손을 드는 아이는 단 세 명뿐이다. "자기가 안 읽어도 집에 신문 배달되는 사람은 손 들어주세요." 아까 세 아이의 손이 다시 올라간다. "요새 누가 신문을 봐요." "맞아. 인터넷(뉴스)도 잘 안 보는데." 장난 섞인 푸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 웃지 못 할 촌극은 교육열이 높다는 경기도의 한 지역 학원 강의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직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홍모(32)씨는 초임 교사 시절 신문 스크랩을 과제로 낸 적이 있다. 반 아이들 대부분이 인터넷 출력물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신문을 구독하는 가정 자체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홍씨는 "요즘은 학부모부터가 신문을 안 봐요" 라며 "상황을 아니까 신문 관련 과제를 낼 때부터 인터넷에서 찾아오라고 시킵니다"라고 말했다. 학원에서 국어과를 담당하고 있는 전직 교사 이모(40)씨는 "책도 안 읽는데 신문을 보겠냐"고 토로했다. 그는 "수행평가 과제로 독후감을 한 번 낸 적이 있는데 네다섯 단위로 내용이 똑같았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이버 등 인터넷 포탈 검색을 통해 그대로 베껴서 냈다는 소리다. "책을 사기는 하는데 나머지 녀석들도 머리말이랑 꼬리말만 보고 대강 적어 냈다"라며 "진짜 책을 읽은 애들은 서너명도 안된다"고 이씨는 한탄했다.

학생 독서율 변화 추이

◇그냥 안 읽어요=실제 중고등학생들의 독서량은 현저히 떨어진다. 올해 고 1이 된다는 김(16)모양은 "남는 시간에는 그냥 게임하지 책보는 애들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이모(16)군도 "책 보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다"고 거들었다. 한 달에 두 권 이상 보는 사람을 찾는 질문에 대답하는 아이들은 거의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학원이 바쁘거나 공부할 분량이 많다'거나 하는 이유보다는 '그냥 안 읽는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교사들과 아이들의 현실 인식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만나 본 대부분의 교사들이 인터넷 문화나 학원 등의 입시위주 교육 등을 책과 신문과 멀어지는 이유로 꼽았다.반면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시간이나 방법과는 상관없이 책이나 신문을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보통신이나 교육 환경의 변화가 책과 신문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기본 환경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인식조차 없었다. 책과 신문은 그냥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초ㆍ중ㆍ고교생의 독서율은 89.1%로 전년도 90.6%에 비해 1.5%포인트 낮아졌다.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1년간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일반 도서를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말이다.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 하루 52분이던 독서 시간은 중학교 땐 38분, 고등학교 땐 34분으로 감소하다가 성인이 되면 29분으로 줄어든다.

여가 활용시 독서의 비중(학생)

◇성인도 책보다는 인터넷=이같은 풍토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서 시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수준이다. 위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3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 연간 도서구입비도 9600원에 불과했다. 얇은 책 한권도 만원이 넘는 요즘 시세를 생각 할 때 일 년에 책 한권도 사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른들의 인식이나 행동부터가 책 읽는 환경 조성과는 거리가 있다.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의 어희재 연구원은 "어른들이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독서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며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모를 중심으로 한 어른 세대의 역할이 중요한 데 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또 한 방송국에서 보도된 제천의 초등학생 사례를 언급하며 "어릴 때부터 제천 기적의 도서관을 이용하던 초등학생이 서울로 전학을 가면서 부족한 도서관 시설에 실망하는 대목이 나온다"며 "그 초등학생이 '나에게 힘이 있다면 제천의 도서관을 뿌리 채 뽑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독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모 고등학교의 교사는 "책이나 신문을 가지고 하는 교육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에 잘 활용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고등학생을 키우는 한 학부모는 "책이나 신문을 보라고 시키고 싶어도 성적관리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가장 주도적으로 독서교육을 이끌어야 할 어른들이 독서교육을 먼저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신문이나 책과 멀어지는 이유를 꼭 입시위주 교육이나 인터넷 문화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게임하는 아이들. 여가시간이 생기면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br />

박지성 기자 jiseo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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