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씨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여성영화인모임이 10일 전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23년 경북 하양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전 가정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윤용균 감독의 소개로 조선영화사 촬영소에서 편집을 했다. 신경균 감독의 영화 '새로운 맹서(1947년)'에 스크립터로 참여하기도 했다.
고인은 1954년 남편인 극작가 이보라씨가 쓴 시나리오로 '미망인'을 연출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 됐다. 제작비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막 출산한 딸을 등에 업고 촬영에 임했다. 이 영화는 6·25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어린 딸과 살아가는 여성이 매력적인 청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갈등을 다룬다. 당시 급증한 전쟁 미망인의 문제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에 선 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뤘다. 1955년 3월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고인은 월간 영화잡지 '시네마팬'을 발간하다가 1957년 동아출판사에 입사해 23년 동안 재직했다. 1992년 미국으로 떠나 한동안 영화계에서 잊혔으나 2001년 임순례 감독(57)의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을 통해 영화 인생이 재조명됐다. 이 작품에서 고인은 "'미망인'을 찍을 때 죽을 만큼 고생했지만, 눈물이 나도록 당시가 그립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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