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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바꿔봐요]'미래건설정책네트워크'에 거는 기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46초

'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이젠 바꿔봐요]'미래건설정책네트워크'에 거는 기대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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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래건설의 틀을 새로 만든다는데,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게 할 의욕이 분명해 보입니다. 과거 유사한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공부 못하는 놈이 방학 내내 시간표만 짰었다’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기득권의 저항은 늘 감춰진다


새로 만든 제도들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틀은 기존의 지식과 경험, 인적 네트워크 등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부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은 교묘하고도 필사적입니다. 새로운 틀을 만드는데 이해가 걸린 네 부류, 즉 국가(공무원), 시장(원수급자, 하수급자, 투자자), 관리자(전문가), 작업자(기능인) 등의 저항을 뚫고 틀을 바꾸려면, 끝까지 책임질 사람들이 이 과업을 맡고, 정부는 그 결과물의 실행을 보장해야 합니다.

새로운 틀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들, 먹거리와 이해관계자간 문제해결을 정부에 기대려는 시장참여자들, 책상머리에서 기존의 자료나 선진 기법을 베끼는 전문가들, 자기의 미숙함과 미비함을 약자라는 이유로 보상받으려는 작업자들의 오래된 관행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치밀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문성이 공정성을 담보한다


지금 한국의 건설공급능력은 국내 수요를 많이 초과합니다. 해외를 새로운 수요로 인식하는 것은 옳지만, 다 살릴 수 없다면 경쟁력 있는 회사와 전문가만 해외로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글로벌 경쟁력은 회사의 크기가 아니라 전문성에 바탕을 둔 생산성이 핵심입니다.


건설업은 일회성 조립의 서비스업인데, 같은 수주산업이라도 제작설비의 유무, 시장의 규모, 고객 등의 차이 때문에 건설업은 조선이나 항공산업과는 경영환경이 다릅니다. 건설업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전문가 집단에게는 매력적인 반면에, 초기투자가 적고 단기경영계획에 의존하므로 공정성이 훼손되기 쉬운 약점이 있습니다.


공정성의 제일 원칙은 낙찰자 선정 기준을 전문성에 맞추는 것입니다. 종합심사낙찰제로는 글로벌 역량을 키우지 못합니다. 투명성에 치우쳐서 전문성이 결여된 입찰시스템은 오히려 부정과 비효율을 가져올 뿐임을 지난 수십년간 경험해 왔습니다. 새로운 틀에 동참할 기회는 공정하게 주되 못 따라오면 과감히 퇴출시켜야 합니다.


중소영세기업은 그들만의 장(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지역 공동도급의 진정한 취지는 그 지역의 기능인력을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사규모는 작게 하고 현장의 안전, 품질, 환경 같은 분야는 별도의 전문용역회사를 현장에 투입해서 작업자와 지역환경을 보호토록 하면 될 것입니다.


◆원가(Cost)와 가격(Price)은 다르다

발주자에게는 입찰금액이 자기의 사업원가가 되므로 낮은 시장가격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최저가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원가와 가격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현장원가는 대부분이 노무비와 자재비이므로 경직적 성격을 갖습니다. 여기에 본사관리비와 이윤(O&P)을 붙인 것이 입찰가격인데,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입찰자간의 가격 차이는 O&P의 차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입찰제도에서 이 가격은 시장의 원가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닙니다. 현장의 원가와 괴리된 입찰제도는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시장을 왜곡시킵니다.


입찰의 기초가 되는 추정가격은 말 그대로 업체선정을 위한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추정가격보다 1원이라도 높으면 실격시키는 경직적 운영행태는 이 제도가 나눠먹기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장가격은 현장작업자의 생계비로부터 시작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혁신적인 기술과 공법은 과감히 받아들여 건설산업이 4차산업혁명시대에 앞장서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약자라는 관념이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든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사회안전망에 필요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배려가 그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자주적인 노력을 태만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더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대기업이나 발주자에게 감독 관리의 책임을 크게 물을수록 현장은 더 경직적으로 운영되어 생산성은 떨어지게 됩니다. 자기의 생명은 자기가 지키면서 고객에게는 좋은 품질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은 현장일선의 작업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함께 책임을 물어야 사고가 적어집니다. 안전, 환경, 품질, 보건의 기본을 지키도록 훈련시키고 또 훈련시키면 안전하고 생산성 높은 현장이 될 것입니다.


◆글로벌화는 영어로부터 시작된다


위에서 열거한 기득권집단들도 글로벌화가 우리 건설산업의 생존이 걸린 과제라고 공감하면서도, 사실상 위협으로 느낍니다. 그간 수많은 선진제도와 기법을 도입했지만 필수적 역량인 소통능력, 그 중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언어문제는 늘 슬그머니 도외시되었습니다.


1997년부터 한국은 WTO정부조달협정에 가입된 나라입니다. 82억원이상의 정부공사는 국제입찰대상입니다. 외국건설사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우리건설업체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제도가 매우 낙후되었고 폐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애국심이니 시장보호니 하고 왜곡하는 집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득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국내에서 키우지 못하는 손실이 훨씬 크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하사관 없이 전쟁에 이길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이 해외공사 어려움의 원인을 해외시장환경이 아닌 우리의 역량 부족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공사 현장 최일선의 어려움은 현지하도자와 작업자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유능한 숙련기술자(Skilled Foreman)의 부족입니다. 현장일선 원가를 모르는 대졸 기술자들이 현지하도자로부터 받은 견적금액으로 입찰을 하고 수주를 하는데, 계약 후에 하도자가 우리 업체의 현장장악력이 약함을 알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을 현장경험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일선작업자를 제대로 다루는 하사관을 키우는 일에 우리 사회는 너무도 소홀히 했습니다. 건설업역을 구분하는 경직된 제도로 인하여 일반건설회사에는 숙련기술자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고, CM이라는 선진기법의 피상적 도입이 대졸 기술자들의 현장 실무 역량을 떨어뜨렸습니다.


우리의 손재주와 머리로는 전문분야의 국제화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건설 마이스터를 육성하고, 사회의 인식과 보상 문제를 개선하면 현장에서 이들이 할 일은 정말 많습니다.


◆위원회 조직은 책임이 없다

이번 미래건설정책네트워크에서는 국토부 차관과 민간전문가를 공동대표로 하고 산학연정(産學硏政)의 상시조직으로 구성한 것은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정 8명, 산업 8명, 학·연 5명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몇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정(政)은 순환보직 때문에 도중에 위원이 바뀌기 쉽습니다. 산업계에서는 유관 협회의 고위 임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협회는 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므로 정부의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고, 또한 상호 이익을 조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학(學)·연(硏)쪽에서 이 과제를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들은 그간 정부정책에 많이 참여했던 자타가 인정하는 대표적 전문가들인데, 그간 본인들의 주장을 반영한 제도들이 왜 시장에서 작동을 못했는지 잘 살피보기 바랍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위원회 조직은 실행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없습니다. 최종 책임과 권한은 공무원이나 발주처의 장(長)에게 있습니다.


정부의 진지한 노력에 이제는 시장이 화답할 차례입니다. 시작단계부터 건설회사와 설계엔지니어링회사에서 중견실무자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합니다. 다 만들어 놓았더니 뒤에서 구시렁대는 행태가 이번에는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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