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날마다 세 개의 터널을 지나다닙니다. 하나는 제법 길고, 둘은 비교적 짧습니다. 둘은 무료지만 하나는 유료입니다. 한번 지날 때마다 2500원을 냅니다. 하루 두 번이니 무시할 액수는 아니지요. 거기에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보태면, 제가 매일 길에다 바치는 돈은 적지 않습니다.
당연히 가격에 저항감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길보다는 터널 쪽이 더 그렇지요. 문득 문득 '비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마다 지나는 사람은 할인이라도 좀 해줄 일이지 하면서 투덜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만은 금방 뭉개집니다. 마음의 스위치를 곧 바로 '긍정' 모드에 옮겨놓는 습관 덕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범하지도 너그럽지도 못합니다. 그저 매사에 '합리화(合理化)'를 잘 할뿐입니다. 터널통행료에 대한 체념도 따지고 보면 이솝우화 '여우의 신포도' 속 여우같은 태도에 가깝지요. 불리하거나 불편한 생각은 얼른 고쳐먹습니다.
'이 터널이 없으면 어쩔 것인가. 한참을 빙 돌아다녀야 한다. 통근시간, 이 주변의 도로 사정을 생각해보자. 잘못 걸리면 아예 길에 갇히기 십상이다. 출근시간이 삼십분 더 걸릴 수도 있고, 귀가시간이 한 시간 늦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터널은 내게 하루에 한 두 시간쯤을 선물하는 셈이다. 일주일이면 몇 시간인가? 열흘이면?'
그렇기에 저의 터널 통행료는 '시간'이란 이름의 물건 값입니다. '요금소'는 시간을 파는 가게지요. 물론 다른 이용객들의 생각은 제각각일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를 테지요. 심야엔 비싸게, 아침저녁엔 싸게 느낄 것입니다. 한가한 사람은 비싸게, 분초(分秒)를 다투는 이는 저렴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터널이라는 물건을 애용한다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이땅의 모든 터널이 그렇게 평화로운 소비의 대상은 아닙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터널은 대개 포식자(捕食者)에 가깝습니다. 제 고향 사정만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2㎞ 길이의 터널 하나가 수백 년 역사의 고갯길을 먹어치웠습니다. 아흔아홉 굽이 옛길이 존재의 이유를 잃었습니다.
길만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상점과 주막과 민박집이 실업(失業)의 처지에 놓였습니다. 전설이나 설화를 이야기하고 풍물과 조형물을 내세워 '노스탤지어'를 일으켜보지만 좋았던 시절을 돌이키기엔 역부족입니다. 터널이 '이야기 길'을 잡아먹었습니다.
도처에 터널입니다. 길이 늘어나니 그것도 자꾸 많아지는 것이겠지요. 걱정스러워 하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터널을 뚫는 일이 산천(山川)을 덜 망가뜨리고 경제적으로도 제일 효과적인 도로 건설 방식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로들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이제 '한 시간대'에 당신이 가고 싶어 하는 해변이나 휴양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궁금해집니다. '바닷가에 가는데 왜 그렇게 쏜살같이 가야하나. 숲속을 찾아가는 여정이 뭐 그렇게 바쁠까.' 제가 궁금해 하든 말든 엊그제 난 길 옆으로 또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숲이 있던 자리에 새로 뚫리고 있는 구멍이 아궁이처럼 탐욕스러워 보입니다. 길들이 마라톤경기처럼 기록단축 경쟁을 합니다. 여행객들은 귀대시간에 쫓긴 휴가병처럼 서두릅니다.
눈부신 경치, 천하의 절경일수록 땀 흘려 찾아온 이에게 자태를 허락하고 싶을 것입니다. 금강산이 아름다운 이유 한 가지도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점 아닐까요. 그 산의 기행문들이 대부분 야단스런 감탄과 감격의 기록인 것 또한 거기 이르는 길의 고단함과 무관하지 않을 테고 말입니다.
만일에 만물상이나 비로봉 밑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세상이 온다면, 금강산은 천년만년 그렇게 아름다운 비경(秘境)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철없는 낭만주의자의 한가한 시비쯤으로 웃어넘길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모쪼록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새로 난 터널로 달려가서 만난 '구름바다'보다, 인적 끊긴 고갯길 꼭대기에서 더 아름다운 운해(雲海)를 목격하기를. 최신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맛집'보다 한적한 지방도로변 점순 할매네 집이 '한 수 위'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통행금지 푯말이 붙은 터널 덕분에, 일곱 살 때 보았던 쌍무지개를 다시 보게 되기를.
낯선 터널을 만나거든, 인사를 건네며 말을 붙여보세요. "터널아, 너로 인하여 지워지고 있는 길은 어디인가? 땅속으로 가는 자동차가 놓칠 수밖에 없는 풍경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겐 이렇게 물어보세요. "소금강을 보러 가면서 왜 인천공항으로 '바이어' 마중 가는 영업사원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가?"
또 있습니다. 우리 오늘 영화 '터널'의 주인공처럼 외쳐볼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갇혀있는 이 어두운 터널의 끝은 어딘지. 터널을 나가면 무엇이 기다리는지. 소설 '설국(雪國)'의 첫머리처럼 하얗게 눈 덮인 세상이 나오는지, 어쩐지.'
윤제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