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섭 남영비비안 상품기획팀장
[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남자가 만드는 여성 속옷은 어떤 모습일까."
국내 대표 속옷기업인 남영비비안의 상품기획팀장은 남성이다. 비비안 제품 대다수는 20년 넘게 한우물을 판 손영섭 상품기획팀장(49)의 손을 거쳐 갔다. 손 팀장은 1993년 입사해 상품기획 담당 부서에서 근무했고, 비비안뿐만 아니라 수입브랜드 바바라 등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했다.
'남성이 여성속옷을 만드는 작업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손 팀장은 한계를 인정했다.
"남성이 경험할 수 없는 여성속옷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한계와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남영비비안에서는 다양한 체형의 피팅모델을 통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직접 사용할 수 없기에 착용감 등을 세세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디자인이나 소재 등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20년 넘게 회사에서 상품을 기획한 만큼 손 팀장의 손을 거친 속옷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 중에서도 위기 속에서도 꽃을 피운 제품이 기억에 남는다. 가슴을 모아 올려주는 볼륨업 기능이 있는 몰드컵을 해외에서 수입해 제품을 생산했던 당시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입 과정에서 착오로 볼륨업 없는 몰드컵이 들어왔다. 생산은 이미 임박해 새로 자재를 받을 시간이 없었다. 영업 일선에서 볼륨업 기능이 없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도 많다는 의견을 개진했고, 의도치 않게 관련 제품을 생산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히트 제품은 우연히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사례였죠. 사실 속옷도 패션아이템이라 시즌과 계절을 미리 앞서 예측하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시즌 겉옷 패션의 트렌드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리 예측하고 적중시켜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실패작도 여럿 있었다. 우수한 기능을 갖췄지만 경쟁사 제품이 소비자 관련 프로그램에 불만소재로 소개되면서 그 여파로 실패를 경험했다. 막상 샘플을 제작하고 나니 소재별로 색상이 어울리지 않다거나 봉제 과정에서 피팅감이 나빠 실제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히트상품은 트렌드, 가격, 컬러, 디자인, 착용감, 거기에 마케팅까지 다양한 모든 여건이 잘 부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이번 신제품인 '헬로핏' 브라는 성공사례로 분류할 수 있게 됐네요."
헬로핏 브라는 자신의 몸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에서 출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비비안은 여성의 당당한 자신감을 내세웠다. 이를 반영한 첫 단추가 '헬로핏' 브라다. 이 제품은 몸매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건강한 몸매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속옷이 돕는 역할을 하자는 데서 착안이 됐다.
"헬로핏 브라의 경우는 여러 색상을 한꺼번에 보여주고자 4가지 색상을 동시에 출고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 자재 공급이나 공장 수배, 생산 등에서 조금씩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결과가 좋았죠."
그는 상품기획자로서의 매력을 인생과 비교했다. "다양한 삶을 지켜보면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어렵거나, 반대로 시작은 힘들었으나 마무리는 좋을 때가 있죠. 제품의 일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상품기획자라는 직업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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