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홍유라 기자] 국민회의(가칭)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의원은 21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야권통합'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통합을 위해서는 친노 패권주의·김종인 선대위원장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천 의원은 19일엔 안철수·김한길 의원과 회동했다. 야권통합의 향배가 오리무중에 빠진 상황이다.
천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운영위원회의를 갖고 "더민주의 상황을 더 지켜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김 의원과의 3자 회동에 대해선 "원론적 수준에서 공통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만 했다. 천 의원에게 '통합·연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중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셈이다. 천 의원의 몸값은 더 치솟게 됐다.
천 의원은 먼저 친노 패권주의 해체와 김 위원장의 국보위 참여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더민주가 통합을 요구하기 전에 해당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단 의미다. 천 의원은 "더민주의 현재상황은 전반적으로 패권주의가 해체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전두환 정부 국보위에 참여했고, 박근혜 정권을 출범시켜 민주주의와 민생파탄에 결정적 기여를 한 김 위원장은 어떤 형태로든지 문제를 정리하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제안한 '범야권 전략협의체'에 대해서도 판단을 보류했다. 천 의원은 "야권지지자들이 한 목소리로 박근혜 정권을 힘 있게 견제하고 바꾸라고 요청한다는 심 대표의 인식에 공감한다"면서도 "국민회의로서는 진보정당인 정의당과의 연대는 다른 야권세력과 연대의 가닥이 잡힌 이후에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선을 그었다.
천 의원이 이같은 태도를 취함으로써 야권통합의 향배는 한층 복잡해졌다. 문 대표가 제안한 정의당, 천 의원과의 통합은 일단 무기한 연기됐다. 문 대표의 사퇴 후 '김종인 체제' 전환 및 '야권통합'란 큰 그림에 균열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당초 야권 통합·연대에 소극적이었던 국민의당은 다급하게 천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당의 기세가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박영선 더민주 전 원내대표는 이날 당 잔류를 선언했다. 더민주 의원들의 탈당세는 잦아드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천 의원이 더민주 쪽으로 선회한다면 야권 내 국민의당 입지는 급격히 좁아지게 된다.
앞서 국민의당의 안 의원과 김 의원은 천 의원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급히 회동을 갖고, 함께해줄 것을 부탁했다. 천 의원은 "서로의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최초의 자리였고, 야권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크게 보면 구체적인 협상과 연대, 통합의 조건 등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이날 밝혔다.
그러면서도 천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그는 "한 위원장의 발언은 친일·독재세력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한다"면서 "그게 국민의당 정체성의 중심이라면 함께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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