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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디지털 휴머니즘’

시계아이콘02분 25초 소요

“디지털 제품들이 사용 편의성, 효율성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반면 인간 본연의 가치 추구나 감성적인 면은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최첨단 기술에 인간 본연의 가치와 감성을 불어 넣는 ‘디지털 휴머니즘’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겠습니다.” 삼성전자 윤부근 사장이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IFA 2009’ 개막 기조연설에서 삼성전자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윤 사장은 이어 “디지털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 가치가 만나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할 시점에 왔다”며 ‘디지털 휴머니즘’을 구현하기 위해 제품의 핵심기능(Essence)을 강화하고, 제품을 통한 주변 사람들과의 공감대(Engagement)를 형성하며, 소비자들의 느낌과 스타일을 표현(Expression)하고, 쉽고 편하게 제품을 쓸 수 있는 경험(Experience) 증대와 친환경(Eco) 중시 등 5E를 차별화 전략으로 밝혔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로 그룹의 실질적인 2인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차세대 경영방침으로 설정한 ‘디지털 휴머니즘’은 삼성의 지향점이 될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습니다.


사실 인류 기술의 발전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속속 현실로 나타나게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나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도 생활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들의 포로 아닌 포로가 되어 그것들이 없으면 갑갑하고 생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이 편하고자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 앞에 인간 스스로가 발목을 잡힌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들의 도덕성이나 인간미는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만을 추구했을 뿐 인간관계에서의 본질적 가치를 도외시한 결과입니다. 인터넷의 자바 프로그램을 만든 에릭 슈미트 미국 오바마정권의 정보기술(IT)정책 고문은 얼마 전 한 대학 졸업식에서 “학생 여러분, 컴퓨터를 끄십시오.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래야 사람이 보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은 의미심장한 연설입니다.


최첨단 산업사회에서 볼 수 있는 휴머니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기도 합니다. 원래 휴머니즘은 모든 인간적인 것,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세 또는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본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려는 입장 즉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상이나 이론을 통칭하고 있습니다. 지배와 피지배, 객관적 제도와 개인적 욕구 사이에서 야기되는 괴리와 갈등으로 인해 인간성에 대한 왜곡과 억압이 행해질 수 있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인간성 존중운동이 예부터 펼쳐져 왔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기술과의 사이에서 겪는 소외, 첨단 기술과 인간과의 소통 부재가 가져오는 인간의 자율성과 개성의 억압이 반휴머니즘의 사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학의 폭력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받고 있는 일도 빈번합니다. 특히 과학의 발달에 의한 가공할 만한 위력의 무기들은 인간과 인류가 황폐화하는, 휴머니즘이 송두리째 묵살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또 너무 똑똑한 인공지능의 여러 제품들이 개발되었지만 실제 사용빈도가 낮은 것도 휴머니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 인간을 이해하는 휴먼테크놀로지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견했던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최근 출간한 ‘테크놀로지의 종말’에서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대중화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외면한 채 기계 그 자체가 원동력이 되어 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인간의 오랜 습관과 욕구, 문화체계와 같은 요인들을 무시한 채 기계적 진화를 거듭한 제품은 결국 참담한 결과를 맞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조금씩 개선하고 적응해 가며 발전하는 자연계의 진화법칙을 따른 기술이 ‘테크노혁명’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휴머니즘은 기술의 진화 뿐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적용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을 떠나지 않는 ‘정(情)’을 앞세운 초코파이 광고가 있었습니다. 초코파이를 처음 개발한 회사가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지자 인간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잔잔한 광고를 내보내며 다시 한번 우위를 과시했습니다. 이미 정글로 변한 시장에서 휴머니즘을 앞세우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강조한 것입니다.


정치에서도 사회에서도 교육에서도 휴머니즘은 필요합니다. 요즈음과 같이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은 정치인이라고 나서는 이들이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이익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근엄한 권위와 권력만을 추구할 뿐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진정한 휴머니스트가 없습니다. 교육 현장도 매한가지입니다.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온통 경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최근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위장 전입시키고 당당한 듯 이야기하는 것도 이기주의와 부도덕의 결과입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 만연돼 있는 편의와 효율만을 내세우는 풍조가 빚은 반인간적인 처사입니다. 기술 발달이 우리에게 주는 반작용을 다시 생각할 때입니다.


성장 일변도를 추구하며 간혹 사회에 물의를 빚기까지 했던 삼성이 휴머니즘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 이를 제품에 접목시키겠다고 야심차게 제시한 ‘디지털 휴머니즘’이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도덕성에 어떻게 다가갈지 관심이 큽니다. 기술보다는 휴머니즘이 화두가 되는 인본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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