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를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로 몰아은 위기의 진원지인 금융시장에 화색이 돌고 있다. 신용경색을 가늠하는 지표들이 속속 제자리는 찾는 모습이다. 이와 달리 실물경기는 한파가 여전하다. 밑바닥 경기를 나타내는 고용과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고, 주택 압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올해 하반기 실물경기 바닥을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강한 경기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 신용경색 '해빙 무드' = 글로벌 경기침체의 진원지인 금융시장에 화색이 돌고 있다. 3개월 달러화 리보금리가 0.8%선으로 떨어지고 TED 스프레드가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등 신용경색을 가늠하는 지표들이 속속 제자리를 찾는 모습이다.
영국은행연합회(BBA)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사상 최초로 1%를 하회했던 3개월 달러화 리보금리(런던 은행간 금리)는 15일 0.83%를 기록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지난해 10월 리보금리는 4.82%까지 치솟았다.
리보와 오버나잇스왑(OIS) 스프레드 역시 63bp로 지난해 3월24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옵션 투자자들은 스프레드가 연말 52bp까지 하락하는 데 베팅하고 있다. 리보-OIS 스프레드가 떨어진 것은 은행간 자금거래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TED 스프레드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날 TED 스프레드는 전날보다 3bp 하락한 67bp를 기록했다. 이는 BNP파리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로 인해 펀드 환매를 중단했던 2007년 8월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TED 스프레드는 3개월물 미국 국채수익률과 리보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신용경색의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기업 자금조달 역시 숨통이 트이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월마트는 1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2007년 신용위기가 촉발된 이후 최저 수준의 스프레드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월마트가 발행한 5년만기 회사채과 5년물 국고채의 스프레드는 125bp를 기록했다. 연초만 해도 월마트의 5년만기 회사채 스프레드는 175bp였다.
이밖에 영국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의 거래가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이전 수준을 회복,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완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물가연동채권의 거래 규모는 과거 월평균 380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으나 최근 위기 이전 수준을 되찾았다.
UBS는 "최근 시장을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유동성 측면에서 바닥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RBS의 외환전략가인 그레그 깁스 역시 "신용경색에 대한 극도의 공포는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이며, 금융시스템의 유동성이 정상 수준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 고용·소비, 밑바닥 경기 '얼음짝' = 온기가 돌기 시작한 금융시장과 달리 주요 산업은 감원 한파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경기침체의 단초를 제공한 금융업계에 이어 자동차와 IT 석유화학 등 전업종에 걸쳐 실직자가 속출하는 양상이다.
실직 한파는 최근 발표된 지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 주요국가의 실업률은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8.9%를 기록한 미국 실업률은 올해 말 1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역시 실업자 220만 시대를 열었고, 유럽연합의 평균 실업률은 연말 11.5%에 이를 전망이다.
고용 한파는 소비 침체와 제조업 경기 둔화, 부동산 경기 하강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미국 4월 주택압류는 전년 대비 32% 급증했고, 소매 판매는 2개월 연속 하락해 얼어 붙은 소비심리를 반영했다.
제조업 경기는 하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월 미국 산업생산지수는 97.1을 기록, 전년 대비 12.5% 하락했다. 미국 산업생산은 6개월 연속 감소세다. 뉴욕 연준이 발표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지수는 -4.6을 기록, 위축이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설비가동률 역시 69.1%로 전월 대비 0.3%포인트 하락했다. 설비가동이 둔화된 것은 소비가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재고 줄이기에 나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뉴욕 제조업 경기와 산업생산이 감소폭을 좁인 것이 위안거리다.
◆ 하반기 바닥, V자 어려워 =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의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실업으로 인한 소득 감소 문제가 맞물려 있어 가계 소비에서 기업 경기로 이어지는 경기 회복의 선순환 고리가 단기간 안에 형성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이른바 '그린슛(Green Shoot, 경기 회복 조짐)'을 언급한 데 이어 경제 수장들의 장밋빛 전망이 연이어 나왔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로렌스 서머스 미국 백악관 국제경제위원장은 15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의 자유낙하가 마무리됐다"고 하면서도 "소강 상태를 맞았지만 지속적인 경제 회복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일자리 감소가 큰 폭으로 나타날 수 있고, 회복 시기가 언제일 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실시한 조사에서 경제전문가들은 오는 8월 경기가 바닥권에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내놓았다. 하지만 강한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제가 완전히 회복해 이번 침체로 인한 잠재 성장률과 실제 성장률의 격차가 메워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요 금융회사와 경제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 3~4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이번 금융위기를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글로벌 경제가 하강을 멈추더라도 U자나 V자가 아닌 L자 형태의 사이클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수차례의 경기 침체가 지구촌을 강타했지만 제조업이 아닌 금융 부문에서 위기가 시작된 경우 침체의 골이 깊고 회복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글로벌 경제가 동반 침체로 빠져든 이번 위기는 완전히 헤어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경고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