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참여연대, 정신 차렷!
기사입력 2018.09.12 11:50최종수정 2018.09.12 11:50 종합편집부 공수민 기자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중요한 한 축인 혁신 성장이 좌표를 잃고 있다. 정부는 빛의 속도로 규제를 풀어 혁신 성장의 불씨를 지피려 하는데 관련 법 개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 때문이 아니다. 현 정부에 최대의 지분을 갖고 있는 참여연대의 반대 때문이다.

참여연대의 반대는 고약하다. 그들의 반대는 이념적, 교조적이기 때문이다. 요지부동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정부 때부터 일관되게 규제 개혁 입법안에 대해 반대해왔다며 정권이 바뀐 후 찬성으로 선회한 민주당을 비난한다. 왜 민주당은 현실론으로 돌아섰는데 참여연대는 줄기차게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아무리 잘못돼도 그것은 정부의 실책일 뿐 참여연대는 책임지지 않는다. 권력, 즉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나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집단은 언제나 사회의 독이다. 참여연대의 반대론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규제 샌드박스 5법에 대해 "국민의 안전, 환경, 개인정보 보호 등 공익적 가치를 침해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반대한다. 여기서 살펴보자. '우려가 매우 크다'인데 그 우려가 얼마나 심각하고 큰지를 과학적 데이터로 입증하지 못한다. 그저 걱정된다는 수준이다.

학자들은 의사결정 오류의 두 가지 타입을 이야기한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1종 오류(Type I)다. 이에 반해 "문제가 있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2종 오류다. 통계학에서는 2종 오류보다는 1종 오류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참여연대는 확실한 증거나 과학적 분석 없이 '문제 있다'라고 예단하는 전형적인 1종 오류 집단이다. 참여연대에 정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현대 정책학은 규제 도입 시 정교한 규제 영향 분석과 비용 편익 계산을 요구한다. 참여연대가 이것을 제시한 사례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념적, 교조적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또 하나, 규제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규제 이론 중의 하나가 '주류 밀매업자와 전도사(Bootleggers and Baptists)' 이론이다. 1920년 미국에서 시행된 금주법의 효과를 연구한 브루스 얀들이 세운 이론이다. 하나님의 진리와 고상한 명분을 내세워 금주법이라는 규제를 도입하고 보니(Baptists) 이익을 보는 것은 술을 몰래 만들어 전국에 유통한 마피아들(Bootleggers)뿐이더라는 것이다. 금주법에도 미국에서 술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후로 이 이론은 선의로 도입된 규제가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기존 이익집단의 이익에만 기여하는 현상을 묘사하는 학술 용어로 자리 잡았다.

참여연대가 이처럼 고상한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현실을 참여연대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반대하는 법안은 모두 배후에 기존의 공고한 이익집단이 있다. 핀테크(금융+기술), 은산분리 반대에는 기존의 거대 금융 그룹이, 원격 진료 반대에는 의사협회라는 오랜 이익집단이 있다. 지역특화발전특구 반대에는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연대가 있다. 개인정보 보호의 반대에는 정부가 있다. 국민 의료 정보 등 한국의 가장 큰 데이터 저장소는 정부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의 도입 반대에는 기존 택시업자들이 배후에 있다.

참여연대가 안전, 생명, 환경이라는 주제에서 원리주의자에 가까운 이상론을 내세워 경제의 혁신을 반대하는 동안 기존의 이익집단들은 배후에서 그들의 이익을 채운다. 그런데 참여연대가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사회의 특권 계층과 집단을 해체해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경제를 만들고자 하는 단체 아닌가.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는 규제 개혁에 반대함으로써 참여연대는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다. 참여연대가 정신 차려야 하는 이유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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