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4월 총선 이전에 법을 없애 민심을 달래볼 요량이고, 이동통신 3사는 눈치작전을 펴며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돌리려 하고 있다. 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을 줄이기 위해 단말기 가격 할인액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시지원금 제도의 근거가 된다. 이 제도로 온 국민이 ‘호갱’ 됐다며 단통법을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고 외치는 쪽과 소비자 혜택이 줄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통신 업계가 창과 방패처럼 맞붙고 있다.
단통법 폐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올해 업무계획에 포함된 지금까지도 효과를 둘러싼 공방은 여전하다. 지난해 이통 3사의 실적 발표 자료를 보니 공시지원금이 포함된 마케팅·판매수수료가 각 사마다 300억~1000억원가량 감소했다. 지난해는 스마트폰 업계에 큰 장이 선 해다. 한국에서 언팩 행사를 열어 큰 호응을 얻은 갤럭시Z 플립5·폴드5와 역대급 판매고를 올린 아이폰15 시리즈가 출시됐다. 이통사들이 저마다 고객 유치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풀 것으로 예상됐는데, 상황은 정반대였다.
관련 기사가 나간 뒤 이통사들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단말기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마케팅 비용 규모가 자연스레 줄었다" "2018년에 회계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설비 투자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식의 해명이었다. 향후 활발한 경쟁으로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겠단 의지를 보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단통법 폐지는 총선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이다. 단말기 가격은 법이 시행된 10년 전과 달리 2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단통법 폐지는 정해진 수순이라는 관측이 많다. 물론 총선만 겨냥해선 곤란할 것이다. 단지 총선 구호로만 전락하지 않으려면 민관이 정책 실패의 정확한 원인 분석을 해야 한다. 또다시 보조금 경쟁에 치중해 서비스, 품질 경쟁에 소홀히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확보해놔야 한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 식으로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행태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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