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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위장→랜선연애→투자권유…전 세계 휩쓰는 사기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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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범죄 조직, 동남아서 현대판 노예제 운영
젊은 여성 가장해 피해자에 접근
"피해자 70~80% 가짜 사랑에 빠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54세 남성 A씨는 2021년 10월 중국계 여성으로부터 왓츠앱을 통해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을 '제시카'로 소개한 이 여성은 A씨를 만난 적이 있다며 친한 척을 했고, A씨는 이 여성을 만난 기억이 없었지만 채팅을 이어가며 점차 친해졌다.


제시카는 뉴욕에서 호화 생활을 하는 모습을 찍은 자신의 사진을 공유했고, A씨는 그녀에게 아버지를 병간호하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몇주 후, 제시카는 A씨에게 아버지 병간호비를 마련하기 위해 암호화폐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A씨는 투자를 시작했고 초기 수익은 놀라웠다. A씨는 자신이 암호화폐로 수십만 달러를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투자를 이어가던 어느 날, 돌연 A씨의 암호화폐 계정이 잠기고 백만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A씨는 중국 범죄조직이 인신매매를 동원해 벌인 금융사기에 걸려든 것이다.


최근 젊은 여성으로 위장해 가짜 암호화폐 플랫폼에 투자하도록 하는 범죄 수법이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CNN방송은 27일(현지시간)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현대판 노예제를 운영하며 전 세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는 중국 범죄 조직의 사기 실태를 보도했다.


범죄 수법은 간단하다. 조직원들은 젊은 여성을 가장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친해진 다음 가짜 암호화폐 플랫폼에 투자하도록 꼬드긴다. 이들은 처음에 높은 수익률을 보여주며 피해자에게 계속 돈을 투자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나 투자금은 결국 조직원들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피해자를 속이는 과정이 도축 전 돼지의 살을 천천히 찌우는 것과 닮아 이런 범죄 수법을 '돼지 도축 사기'라고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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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는 2020년 9억7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였던 이 사기 범죄의 규모가 올해 들어서는 11월까지 29억달러(약 3조7000억원)로 3배나 늘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를 속인 사기꾼은 젊은 여성이 아니라, 인신매매돼 수용소에 갇힌 현대판 노예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범죄단은 조직적인 범죄를 위해 미얀마 동부 등지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놓고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로 수천 명을 꼬드겨 이곳에 가뒀다. 범죄단은 이후 이들에게 암호화폐로 수백만 달러를 훔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출신의 라케시(가명·33)도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화학 엔지니어였던 그는 IT 기업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지난해 12월 태국 방콕에 왔다. 그러나 공항에서 그를 태운 운전기사는 방콕의 사무실 대신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매솟시로 데려갔다. 3m 담장과 감시탑이 있는 미얀마 내 건물로 끌려간 그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전문 사기꾼이 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했다. 계약서 서명을 거부하자 라케시는 감옥 같은 곳에 던져져 음식이나 물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곳에서 사흘이 지난 뒤 라케시는 살아남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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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원들은 그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여성 '클라라 세모노프'로 위장시켰다. 그의 임무는 미국인, 영국인, 브라질인, 멕시코인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 계속 이들과 연락하는 것이었다. 이후 피해자들이 투자할 준비가 되면 연락망을 팀장 등에게 넘겼다. 라케시는 "(잠재적 피해자의) 70~80%는 가짜 사랑에 빠진다"고 전했다. 충분한 수의 피해자를 속이지 못한 사람은 팔굽혀펴기 수백회 등의 처벌을 받거나 전기 막대기로 맞기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CNN은 중국 범죄 조직이 미얀마 내전 등의 상황을 악용해 이 같은 초국가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분석했다. 미얀마는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치안이 악화하고, 외곽 지역에서는 온라인 사기뿐 아니라 마약 밀매 조직이 활개 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다. 그러나 미얀마 군정은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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