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회식, 송년회, 신년회 등 각종 모임이 많아진다. 반가운 이들을 만나 한 해의 회포를 푸는 즐거운 자리지만 과음과 과식을 하기 쉬운 만큼 각종 소화기 질환에 시달릴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부지원 인천힘찬종합병원 소화기내과 과장은 “잦은 술자리로 인한 음주와 과식은 위장관 운동 이상, 위산 분비 증가 등의 증세와 함께 각종 소화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며 “회식 후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하는 변비, 설사, 배탈이 잦으면 검사 후에 원인에 따른 치료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가슴이 유독 답답하고 신물이 올라온다면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해야 한다. 역류성 식도염은 식도와 위 사이 위액이 거꾸로 흐르지 못하도록 통로를 조여주는 식도 괄약근이 느슨해지며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는 증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역류성 식도염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약 490만명인데 이 중 월별로 보면 연말 회식이 많은 12월이 다른 달에 비해 환자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역류성 식도염은 잦은 음주, 기름진 음식 섭취, 야식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 피곤하다고 식후에 바로 눕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 음식물과 위액이 함께 역류할 수 있다. 위액은 산성을 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방어벽이 약한 식도를 자극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음주 후 구토를 할 때도 위액이 함께 올라와 식도를 손상시키고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킬 수 있다. 식후 30분 이내에 가슴쓰림, 목의 이물감, 목소리 변화, 속 울렁거림, 구역감 등의 증상이 있다면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증상이 심하면 식도에 발생한 염증 때문에 음식을 먹을 때 식도에서 음식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삼킴 장애나 음식과 침을 삼킬 때 통증이 생길 수 있다.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고 금주를 하면 쉽게 호전되지만 증상이 심하다면 위산 분비 억제제, 위장관 운동 촉진제 등의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연말 과음·과식이 초래하는 또 다른 소화기 질환은 급성 췌장염이다. 소화기관이자 내분비기관인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급성 췌장염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음주가 가장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한꺼번에 많은 술을 마시면 췌장은 알코올을 대사하기 위해 췌장액을 더 과하게 분비하는데 이때 췌장액이 십이지장으로 다 배출되지 못하고 췌장으로 역류하면 췌장 세포를 손상시키는 급성 췌장염이 발생한다.
급성 췌장염은 참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상복부 통증과 함께 오심과 구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누우면 통증이 심해지고 몸을 웅크리면 감소한다. 증상이 있으면 임상 소견과 함께 피검사, 컴퓨터 단층 촬영(CT) 같은 영상소견을 종합해 진단하게 되는데 급성 췌장염은 금주, 금식, 수액, 진통제 등으로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급성 췌장염을 앓게 되면 췌장암의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만성 췌장염으로 이환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술 약속이 많은 연말에 각종 소화기 질환을 예방하려면 금주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연말 술자리를 가져야 한다면 가급적 절주하고, 일주일에 2회 이상은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하루 적정 음주량은 남자 40g(소주 4잔) 미만, 여자 20g(소주 2잔) 미만이다.
음주 중에는 수분 부족을 방지하고 알코올의 체내 흡수를 지연시키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는 게 바람직하다. 손상된 간세포 재생에 도움을 주는 단백질 안주와 알코올 분해에 이로운 과일, 채소 등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과도한 양의 음식 섭취는 소화기관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식사량을 조절하고, 조금씩 천천히 먹는 게 좋다.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 역시 소화기 계통을 자극하고 증상을 유발할 수 있어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부지원 인천힘찬종합병원 소화기내과 과장은 “소화기 질환의 증상을 흔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식이나 불규칙한 식사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평소 자주 소화가 안 되거나 더부룩하고, 속이 답답한 경우 전문의 진료를 받고, 중년 이상이라면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 등을 받아 원인을 확인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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