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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 인물]빌게이츠·워런버핏의 기부 롤모델, 척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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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10兆 넘는 전 재산 사회에 환원
면세점 사업으로 부 축적…IT 투자도 성공
익명 원칙에 '자선사업의 제임스 본드' 별칭 얻어

전 재산 80억달러(약 10조8000억원)를 사회에 환원한 '기부왕' 미국 억만장자 찰스 척 피니(Charles Chuck Feeney)가 9일(현지시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익명으로 기부하려다 강제로 세상에 공개돼 '자선 사업계의 제임스 본드'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롤모델'로 꼽을 정도로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했다.


[뉴스속 인물]빌게이츠·워런버핏의 기부 롤모델, 척 피니 '기부왕' 미국 억만장자 찰스 척 피니(사진출처=코넬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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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라, 정말 좋다" 기부로 행복 전파한 피니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피니가 세운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는 이날 피니가 92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망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피니는 최근까지 아내와 둘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소형 임대 아파트에서 거주했다.


피니의 사망 소식은 2020년 그가 자신의 재산을 전액 기부를 마무리한 뒤 재단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한 지 3년 만에 나왔다. 피니는 살아있는 동안 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공언했고 2020년까지 5개 대륙에 총 80억달러를 기부했다. 아내와 은퇴 후 생활을 위한 자금 200만달러만 제외한 상태였다.


재단 해체 소식을 전할 당시 피니는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며 "생전에 목표를 이루게 돼 매우 만족스럽고 좋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들에게 감사하며 내가 진짜 살아있는 동안 전 재산을 기부할지 궁금해했던 사람들에게는 '해봐라,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 대박에 스스로 의구심…"운 좋아 성공" 겸손

1931년생 아일랜드계 미국인 기업가인 피니는 면세점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기업인이었다.


그는 1956년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뒤 1960년 대학 동창과 함께 공항 면세점을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미군이 귀국할 때 들를 수 있는 면세점을 운영하는 사업이었는데, 전후 시기에 세계 여행이 확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야말로 피니의 사업은 대박 났다. 홍콩에서 시작해 유럽, 미국 등 점차 사업이 전 세계로 확대됐고 이 과정에서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뉴스속 인물]빌게이츠·워런버핏의 기부 롤모델, 척 피니 [이미지출처=픽사베이]

그뿐만 아니라 그는 IT 업체가 성장하는 시기에 성장성이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부를 끌어 모았다.


이렇게 억만장자가 된 피니가 처음부터 자신의 재산을 쉽게 기부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2007년 작가 코너 오클레리가 쓴 피니의 전기를 보면 피니는 자신이 50세가 됐던 1980년 당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하와이 호놀룰루 등에 대규모 고급 주택을 보유했고 요트 등을 구입하며 부를 향유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본인이 막대한 부를 가질 권리를 갖게 된 것이 옳은 일인건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선박이나 요트 등을 구입하는 행위가 본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한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책을 읽은 피니는 기부와 관련한 카네기의 생각에 감명받고 이후 생활 방식을 완전히 뒤바꿨다고 한다. 시계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15달러를 넘기면 고민했고, 출장 시에도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했으며 옷도 맞춤복보다는 기성복을 구입했다. 집이나 자동차는 수십년간 소유하지 않았고 리무진도 팔았으며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를 주로 이용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이러한 성공을 두고 '뜻밖의 행운(dumb luck)'을 만나 얻게 된 것이라며 겸손한 자세를 보여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익명 기부' 강조해온 피니, 어쩌다 보니 대중에 공개

피니의 기부는 자선단체를 통해 이뤄졌다. 그는 1982년 자선단체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설립했고, 2년 뒤인 1984년 자신이 세운 면세점 운영 업체인 '듀티프리쇼퍼'의 지분 38.75%를 재단에 양도했다. 이 지분은 시장에 매각된 적이 없어 정확한 가치 판단은 어렵지만 5억달러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 십수년간 수십억달러를 아이티 지진 구호 활동, 남아프리카 에이즈 진료소 등에 전달했다.


[뉴스속 인물]빌게이츠·워런버핏의 기부 롤모델, 척 피니 2012년 코넬대에서 열린 한 행사에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 시장,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스코튼 코넬대 총장, 미 억만장자 찰스 척 피니와 로버트 해리슨 코넬대 이사회 의장이 대화하고 있다.(사진출처=코넬대 홈페이지)

이러한 활동은 모두 비밀리에 이뤄졌다. 실제 피니는 1997년까지 기부 활동을 모두 익명으로 진행했다. 돈을 좇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이 싫어 내린 조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자선단체의 기반을 미국이 아닌 버뮤다에 두기까지 했다. 미국이 공시를 요구해 자신의 기부 사실이 대외적으로 공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피니는 대학이나 의료기관, 인권단체 등에 대부분 익명으로 기부했다. 그는 5개 대륙에 1000개가량의 건물을 설립하는 데 자금을 지원해 도움을 줬지만, 그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적히지 않았다고 NYT는 소개했다. 수혜 기관들은 기부자의 요청으로 익명성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우연히 그의 기부 사실은 대중에 공개됐다. 당시 면세점 사업체인 듀티프리쇼퍼의 지분을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회계 장부가 공개됐고, 장부 조사 과정에서 그의 엄청난 기부 사실이 드러났다. 영화 007 시리즈의 비밀 요원인 제임스 본드를 본따 피니에게 자선활동 계의 제임스 본드라는 별명이 생긴 순간이었다.


공개 이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2020년까지 기부를 지속했다.


피니의 행보를 두고 전 세계에서는 찬사가 이어졌다. 게이츠 MS 창업자는 2012년 포브스지에 "척 피니는 엄청난 롤모델이자 살아있는 동안 베푸는 최고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피니가 2014년 포브스 400 평생 공로상을 받았을 당시 버핏 회장은 그를 두고 "나의 영웅이자 빌 게이츠의 영웅"이라면서 "그는 모든 이의 영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니의 유족으로는 아내와 5명의 자녀, 16명의 손주가 있다. 피니는 1959년 프랑스인 다니엘레 모랄리 다니노스와 혼인해 딸 4명과 아들 1명을 낳았다. 그는 1990년대에 이혼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7개의 자택 등을 아내에게 넘겼으며, 이후 오랫동안 자신의 비서로 활동해온 헬가 플레이즈와 재혼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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