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는 미국 반도체 제재에 맞선 화웨이의 굴기이자 하이실리콘(Hisilicon)의 화려한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중국에서 하이스(海思)로 통하는 화웨이의 100% 자회사 하이실리콘은 화웨이가 핸드폰 사업을 분사한 이듬해인 2004년 광둥성 선전에 설립한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다. 현재 주식 시장에는 상장해 있지 않다.
한동안 반도체업계에서 회자되지 못했던 하이실리콘이 최근 다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화웨이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9000s’를 설계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중국 기술만으로는 접근이 어려웠던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로 개발했다는 점에서 업계는 놀라고 있다.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AP는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中芯國際·중싱궈지)가 만들고 화웨이가 이를 스마트폰에 탑재했다. AP 설계부터 칩 제조, 완성폰 제작까지 모두 중국의 기술력으로 이뤄낸 성과인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100% 중국의 기술력만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에서부터 AP 성능과 수율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논란도 있다.
하이실리콘은 한 때 화웨이 열풍을 타고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반도체 설계회사였다. 2020년 미국이 대(對)중 반도체 수출 규제를 적용하기 전까지 화웨이가 애국심을 끌어들인 자국제품 소비 붐을 타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자체 AP를 채용해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 하이실리콘의 역할이 컸다.
미 제재 전에는 중국 최대 팹리스 기업이자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등 중국 반도체 굴기를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부상했다. 2020년 1분기 하이실리콘의 AP 출하량이 중국 본토 시장에서 처음으로 퀄컴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기록도 남겼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면서 하이실리콘의 위치는 180도 달라졌다. 하이실리콘 AP의 파운드리를 담당하던 대만 TSMC가 화웨이에 들어가는 칩 생산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화웨이와 하이실리콘이 동시에 무너졌다. 하이실리콘의 기술자들은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 및 반도체 기업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2020년 8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는 2021년도 15억달러로 매출이 80% 넘게 급감했다. 현재 하이실리콘의 시장점유율은 0%에 가까울 정도다.
반도체업계는 이번 화웨이의 신형폰 등장으로 죽어가던 하이실리콘이 부활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화웨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사업 구조상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이 불티 나게 팔리면 하이실리콘 점유율이 되살아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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