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들어 보니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덤프트럭이 그만 작디작은 짝꿍을 못 보고 사고를 냈다고 했다. 적나라한 상황 묘사가 어린 내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길을 걷다가 큰 트럭만 보면 분홍 드레스가 걸려 있을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고학년이 될 때까지도 그랬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 겨우 정리된 내 감정은 하나였다.
상실감.
내 곁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 있다는 현실. 누구든지 내 곁에 영원히 머무르는 일 따윈 없다는 개념이 진리처럼 규정된 순간이었다. 너무 일찍 이별을 배운 탓일까. 불현듯 떠나간 존재가 내게 남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허탈한 상실감에 나는 툭하면 멍해졌다.
내 쪽이 더 많은 차지를 한, 연필로 몇 겹의 줄이 그어진, 하나의 책상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 선은 이젠 의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난 짝꿍 없는 1학년을 보내야 했고, 그 누구와도 친해지기 어려운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차피 너도 말없이 떠날 거잖아.’
관계에 불신이 가득했다. 소중함이나 절실함 대신 허무함이나 배신감이 내 마음을 더 지배했다. 짝꿍의 사고 이후 새로운 관계를 맺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 늘 조심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다. 그 일은 내 인생에 ‘사건’이었다.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내가 쓴 시의 제목이기도 했던 이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가슴속에서 빚어졌다.
나는 자주 말한다. 모든 관계는 ‘언제든 서로를 떠날 수 있음’을 전제해야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다고. 상실감은 이 전제를 인정하지 않고 이별을 맞았을 때 가슴에 심하게 맺히는 것이다. 상실감에 내 인생이 져버리게 놓아두진 말자.
난 이렇게 버텼다.
-이동영,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그림 이슬아, 다반, 1만6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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