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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상처만 남긴 전기요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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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회사 내부는 어수선합니다. 사장님 사퇴 사실도 당일 발표 때 알았습니다."


정부의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 발표가 있던 지난 15일 오후 한국전력 한 직원의 말이다. 전기요금 인상안이 결정된 순간이지만 목소리에선 허탈함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요금 인상을 둘러싼 부처 간 불협화음은 정쟁(政爭)이 됐고, 모든 유탄은 한전이 맞았다. 정부와 여당은 한전이 방만 경영 탓에 적자가 늘었다고 했다. 억대 연봉자의 증가, 외유성 출장 논란,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전은 마른 수건을 세 차례나 짜내며 재무구조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의 감사는 연장됐고 한전 수장에 대한 노골적인 사퇴 압박은 결국 성공했다.


한전이 방만하게 경영했다는 정부·여당의 근거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방만 경영만으로 한전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는 건 틀린 말이다. 지난해 기준 한전 예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가장 큰 비중은 전력 구입비(88.5%)가 차지한다. 아무리 인건비로 허리띠를 졸라 매더라도 손해를 보며 전력을 판매하면 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란 셈이다.


핵심은 전기요금의 비정상화에 있다. 이는 전혀 새로운 말이 아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수개월 간 정부에 요금 인상을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장관은 2분기 전기요금 발표가 있던 당일 대국민 설명문을 통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에너지 가격의 급등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한전 적자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향후에도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정부는 2분기 전기요금 인상액을 1kWh(킬로와트시)당 8.0원으로 결정했다. 한전은 이번 인상으로 연간 2조7000억원의 판매수익을 예상했다. 이는 한전의 1분기 적자(6조1776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이번 인상이 경영 정상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정부·여당의 압박에 불과 45일 앞으로 다가온 3분기 요금 인상 논의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도한 재무구조 개선 노력은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의 핵심인 송·변전 시설 구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한전으로선 이번 인상으로 상처만 남은 셈이다.

[기자수첩]상처만 남긴 전기요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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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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