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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긴축에도 금리하락 베팅…위험관리 실패가 파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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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정반대 행보 손실 방어 못해
리스크 담당 임원 반년 이상 공석
CEO는 회사 위기에 주식 매도

Fed 긴축에도 금리하락 베팅…위험관리 실패가 파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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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설립 40여년 만에 문을 닫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해 금리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흐름과는 정반대 행보다. 테크 기업에 대한 자산 쏠림, 시황 오판 등 장밋빛 전망에 기댄 위험 관리 실패가 SVB 파산을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 연말 재무 보고서를 인용해 이 은행이 지난해에만 140억 달러가 넘는 채권에 대한 이자율 스와프 상품 계약을 종료했다고 전했다. 채권 보유량은 크게 늘었지만 사실상 금리 헤지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은행은 통상 이자율 스와프 등을 통해 금리 변동 리스크를 분산한다. SVB는 2021년만 해도 100억 달러 규모 채권에 대해 이자율 스와프를 통해 금리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헤지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260억 달러 규모의 매도 가능 증권 중 5억6300만 달러에 대해서만 이자율 스와프 계약을 체결, 금리 헤지 규모를 대폭 줄였다.


금리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했지만, 은행은 금리 헤지 규모를 줄임으로써 대규모 채권 투자로 인한 미실현손실에 대한 방어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이자율 스와프 상품 등을 통해 금리 인상 리스크를 분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Fed의 움직임과도 정반대다. SVB는 지난해 중반까지 투자자들에게 "금리 하락 민감도를 관리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금리가 다시 내릴 때를 대비해 효과적인 보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고물가로 Fed는 급속한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SVB는 금리 하락을 점친 것이다.


SVB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해 6월 1.7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 시점 4.75%로 상승했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력하다는 지표가 쏟아지면서 SVB 사태 직전까지 Fed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것을 감안하면 예측이 어긋난 것이다.


내부 통제도 ‘낙제점’ 수준이었다. SVB는 지난해 4월 로라 이즈리에타 리스크 담당 임원이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올해 1월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은행에서 담당 임원 자리가 반년 넘게 공석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SVB가 지난주 폐쇄된 이후에서야 처음 공개됐다.


경영진의 인식도 안이했다. 대니얼 벡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회의에서 테크, 헬스케어, 생명과학 산업에 쏠린 사업 구조가 은행에 위험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리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한 테크 업계가 은행 예금 인출에 나서며 SVB는 자금 여력이 바닥 났고, 이 사실을 공개한 지 36시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금융권에서 경영진의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레그 베커 최고경영자(CEO) 역시 2015년 상원에 출석해 "SVB 사업 모델은 시스템적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며 중소 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불과 몇년이 지나지 않아 이 말 역시 공언(空言)이 됐다.


리스크가 없다며 자신만만하던 베커 CEO와 벡 CFO 등 경영진들은 회사가 위기에 몰리자 가장 먼저 주식을 매도하며 이익을 챙기고 나섰다.


하지만 시장에선 SVB에 경계감을 품는 투자자들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 2020년 54%에 이어 2021년에는 75% 급등했지만 작년에는 66% 하락했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역시 증가했다. S3 파트너스에 따르면 1년 전엔 회사 전체 주식 가운데 1.4%가 공매도 대상이 됐지만 작년 말에는 6.7%까지 치솟았다.



WSJ는 "SVB 경영진은 신중한 은행업계에서 낙관론으로 일관했다"며 "베커 CEO는 SVB의 빠른 부상, 지금은 더 빠른 추락을 위해 그 곳에 서 있다"고 꼬집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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