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만취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무면허 운전까지 적발됐다면 징계 수위는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 판사 A씨는 2020년 7월4일 새벽 서울 서초동에서 혈중알콜농도 0.18%의 만취 상태로 자신의 차를 500m가량 운전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면허가 취소됐다. 그는 이 사건으로 법원에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A씨는 면허가 취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4월엔 무면허 상태로 강남일대 도로를 약 2km 달리다 또 단속됐다. 음주운전에 이어 무면허운전까지 저질렀지만, 법원은 이달 초 A씨에게 예전과 같은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내렸다고 관보에 공고했다.
판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이었다면 어땠을까. 지방 공무원이던 B씨는 2019년 8월 울산 동구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차를 200m가량 운전하다 적발돼 면허가 취소됐다. 그는 그해 10월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다른 공무원 C씨는 2018년 5월 강원도 춘천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단속돼 면허가 취소됐고, 3개월 뒤 해임됐다. 두 공무원은 음주운전만으로 ‘철밥통’ 신분을 내려놔야 했다. 음주·무면허 판사와 대조된다.
음주운전은 자신은 물론 무고한 타인에게도 치명적 불행을 안길 수 있는 중대범죄다. 경찰청 잠정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음주 교통사고가 1만4900여건 발생해 2만3200여명이 다쳤고 160여명이 사망했다. 최근 인천에서 30대 오토바이 배달원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도 음주 교통사고였다. 이처럼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그 가족의 삶까지 파탄에 이르게 한다. 2019년 6월 제2윤창호법(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으로 단속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등 음주운전 근절을 위한 범사회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 공무원은 물론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검찰 조직에서도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한 것은 음주운전을 그만큼 중대범죄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판사 만큼은 치외법권이다. A판사뿐만이 아니다. 2019년 12월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D판사에겐 ‘감봉 2개월’이, 지난해 3월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한 E판사에겐 ‘정직 1개월’ 처분이 전부였다.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헌법에 명시된 신분 보장 때문이다. 헌법에 ‘금고 이상의 형이나 탄핵에 의하지 않고는 법관을 파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보장 필요성이 제기돼 1980년 헌법 개정을 통해 판사는 파면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후 판사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는 견책과 감봉, 정직 등 3가지로 한정됐다. 정직이 최고 수위고 그마저도 최장 1년으로 제한돼 있다.
판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위함이지, 판사 개개인의 비위를 감싸기 위한 게 아니다. 어느 나라든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한다.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이들의 유무죄와 양형을 정하는 판사는 더욱 그렇다. 음주에 무면허운전까지 서슴지 않은 판사에게 중징계를 내리지 않은 법원도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A판사의 ‘정직 1개월’ 징계는 내일(27일) 풀린다. 과거 행실을 보면 그는 아무일 없었다는듯 법정에 출석해 판결을 이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판사가 내린 판결을 어느 피고인이 받아들일 것이며, 이런 판사를 두둔한 사법부를 어느 국민이 신뢰하겠나. 남을 단죄할 자격이 있는지 겸허히 돌아보길 바란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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