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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호방한 기상을 거대한 야욕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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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용의 출현’ 와키사카 야스하루役 변요한
한산도대첩 등 상세히 기술된 '와키사카기' 독파
"야비해 보이는 행동, 그들에겐 신념이었을 수 있어"

[라임라이트]호방한 기상을 거대한 야욕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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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키사카 야스하루(1554~1612)는 임진왜란에서 일본 수군을 이끈 주요 장수다. 삶의 궤적은 ‘와키사카기’로 더듬을 수 있다. 출세 과정, 일화 등이 상세히 기술됐다. 한산도대첩 등 임진왜란 기사도 확인된다. 당시 해전에 관한 몇 안 되는 일본 측 문헌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김시덕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 연구교수는 2012년 학술논문 ‘와키사카기(상)’에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 일본 측이 패배한 1592년 한산도대첩이 자세히 서술되는데, 임진왜란과 관련된 초기 문헌군이 대체로 주인공의 승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조선 측 장수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실명은 모르는 채로 상대 수군 사령관의 용맹이나 거북선의 특이한 모양이 구전으로 전해졌을 수 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그 가능성을 배제하고 시작한다. 이순신(박해일)과 와키사카(변요한)를 맞수 구도로 두고 균등하게 비중을 배분한다.


후자에 할애하는 신은 왜군이 품은 야욕의 상징화에 가깝다. 가토 요시아키(김성균)를 따돌리고 공을 독차지하려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와키사카는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전령이 찾아와 육로 공격이 준비됐다고 전하자 "오늘 자정에 출격한다"라고 선언한다. 옆에 자리한 가토는 펄쩍 뛰며 소리친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오늘 밤이라니." "태풍이 오기 전에 쳐야 하오."


[라임라이트]호방한 기상을 거대한 야욕과 잇다


일촉즉발은 배우 변요한의 연기로 긴장이 배가된다.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오히려 태연하게 왼손을 올리고는 칼을 든 부하들에게 "멈춰"라고 명령한다. 김한민 감독은 요지부동 자세를 세 가지 바스트 샷으로 조명한다. 비슷한 높이에서 각도만 반측면, 정면, 측면으로 달리한다. 어떻게 봐도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하며 하늘을 찌를 듯한 호기를 부각한다.


호방한 기상이 거대한 야욕과 맞닿으려면 강렬한 표현 이상의 연기가 필요하다. 변요한은 체중을 87㎏까지 증량하고 일본 고어를 달달 외웠다. 거의 모든 대사를 꾹꾹 눌러 뱉으며 서사를 담아낼 그릇이 돼갔다. 대다수 배우는 그 안에 배역의 감정과 생각을 넣기에 여념이 없다. 변요한은 노선을 조금 달리했다. ‘와키사카기’를 정독하고 입체감을 더해갔다.


"처음에는 ‘난중일기’를 읽었는데 와키사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와키사카기’를 독파하면서 조금씩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던 것 같다. 그 끝에 야망에 불타는 남자가 서 있었다."


지독한 집념은 1593년 웅천항에서 조선 수군의 집중 공격을 방어한 기록에서 확인된다. 왜군은 크기가 커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판옥선을 탈취할 계획을 세웠다. 복수의 소형 쾌속선이 긴 밧줄로 적선을 묶어 멈추게 하는 작전이었다. 협동심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와키사카와 구키 요시타카는 서로 자기가 먼저 밧줄을 걸었다며 싸웠다.


[라임라이트]호방한 기상을 거대한 야욕과 잇다


조선 수군은 이 틈을 타 화살을 퍼부었고, 와키사카는 부하 구마가이 이스케 등을 잃었다. 배를 탈취한 뒤에도 격론은 계속됐다. 각자 자기가 먼저 공격했다는 보고서를 일본에 보냈다. 와키사카는 가신까지 사신으로 보내 일련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게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음과 같이 답신했다. "아군이 적선 두 척을 탈취했다던데, 그 가운데 한 척을 그대가 탈취했다고 하니 이는 분골쇄신의 결과로서 참으로 신묘하다."



변요한은 "야비해 보일 수 있지만 와키사카에게는 굳은 신념이었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도요토미를 따라 칠본창으로 성장한 배경 등을 살펴보니 전국시대에는 야욕이 노골화돼 있었다. 와키사카에게 그것이 의(義)였을 것이다. 미화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표현해야 감정적으로 풍요로운 인물이 그려질 듯했다.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영웅을 관찰하는 창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또 다른 배역으로…."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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