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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문명과 인간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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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빈번하다. 모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덕분이다. 나는 여기서 ‘덕분이다’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쓴다.


전장연의 시위 이전에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 휠체어로 이동하다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해도 운 나쁜 사고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테니.


그런데 곧 여당이 될 당 대표는 이 시위를 두고 시민을 ‘볼모’로 하는 ‘비문명적’인 시위라고 한다. 다수의 발을 잡고 있어서라고.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본다.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비문명인지.


[W포럼] 문명과 인간됨의 의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3월24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승차 시위를 벌이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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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란 무엇인가. 영어 ‘civilization’의 라틴어 어원 ‘civilis’는 말 그대로 ‘시민다운’을 뜻한다. 시민답게 산다는 것은 무얼 뜻할까? ‘문명’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시민(civis)과 도시(civitas)가 겹쳐 사유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즉 도시 공동체에서 정치적 주체로 살아가는 일, 그게 문명이다. 몸이 불편한 이에게 다니지 말라고 하는 건 시민다운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니 장애인에게 이동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가 비문명이다. 이동권을 호소하다가 지하철을 타고서라도 그 절박함을 알리는 건 비문명적인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보이지 않는 공간에 밀쳐두었다. 집안에 장애인이 있어도 잘 드러내지 못했다. 교통약자를 공공의 장소에 불러내는 일에도 우린 매우 인색하다.


저상버스 전국 보급률이 30%도 안 된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비교적 높은 서울이지만 거리나 공공건물에서 장애인이 휠체어로 이동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그 점에서 장애인을 시민다운 생활공간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아직 문명국이 아니다.


시위로 1시간이 늦어지는 일상에 화가 난다면 30년을 갇혀 살아야 했던 장애인의 고립을 먼저 생각해보자. 볼모는 시민이 아니라 다수 대중의 편리에 떠밀려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도 참고 살던 장애인들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자라면 시위의 비문명성을 따질 게 아니라 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예산이 삭감되는지, 왜 그들이 그토록 비통하게 거리로 나와야 했는지 그걸 살펴야 한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이 아니라 약자들을 먼저 배려하지 못하고 자유를 누린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미안해야 한다.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동권은 그냥 놀러 다니는 자유가 아니라 일하고 관계 맺는 인간됨의 기본적인 권리와 밀접히 연결된다. 장애의 90%가 후천적인 질병이나 사고 때문이라고 하니, 사실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가 장애인 이동권에 둔감했다는 건 그들이 시민으로 관계를 맺으며 일할 자유를 박탈했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 고립되면 관계를 맺기도, 생활인으로 살기도 힘들다는 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세상에서 격리를 해본 우리는 생생하게 체감하지 않았나. 그 고립과 불편, 불안을 삶의 기본값으로 가진 이들이 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를, 관계 맺고 일하는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기를 바란다. 다른 어떤 것보다 화급한 생의 조건, 이게 문명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는 또 한 분이 휠체어로 이동하다가 죽었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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