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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은행의 국채 매입과 통화정책의 (불)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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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은행의 국채 매입과 통화정책의 (불)투명성 김홍범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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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기준금리가 소폭 인상됐다. 연초부터 추경이 논의되면서 적자국채 발행도 예상됐다. 덕분에 국채금리가 뛰어올랐다. 이에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초 국고채 2조원을 단순매입했다. 그 며칠 후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한은 총재는 "국고채 추가 단순매입" 등을 "적기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추경 및 국채발행을 감안해서 통화정책을 수행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정부 재정정책이 어느덧 한은 통화정책을 지배하는 상황(재정지배)이 온 것인가.


국채 단순매입은 한은 대차대조표에서 통화성부채(본원통화) 항목의 증가로 표시된다. 이는 시중 통화량 확대를 가져오는 주된 요인이다. 최근 재정건전성의 급격한 악화는 단순매입이 국가채무의 화폐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을 크게 증폭시켰다. 빈번해진 추경에 따라 국채 단순매입이 수시로 필요하게 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면, 본원통화 통제가 어려워진 한은에게 자율적 통화정책이란 그림의 떡이다.


그럼에도, 이제껏 국채 단순매입이 "시장안정화 차원"이었다는 한은 총재의 설명 자체를 흠잡긴 어렵다. 한은 간행물에도 단순매입은 "RP매각용 국고채...확보" 또는 "시장금리 급등시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것으로 나와 있다. 문제는 총재의 설명이 원론에 그쳐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6년 말 14.5조원이던 한은 보유 국채 규모는 2021년 말 29.0조원으로 5년 만에 2배가 됐다. 이는 그 이전 5년 기간과는 판이하다. 2011년 말 한은 보유 국채는 2016년 말과 엇비슷한 14.4조원이었기 때문이다(한은 ECOS). 한편, 현임 총재의 8년 재직기간(2014.4~2022.3) 중 지금까지 국고채 단순매입은 모두 34회에 걸쳐 총 34.5조원 만큼 실시됐다(특히, 후반 4년간 18회 및 23.1조원). 이 또한, 그 이전 8년 기간(2006.4~2014.3)의 15회 및 9.0조원과는 대조가 된다(한은 홈페이지).


한은 보유 국채 규모나 단순매입의 빈도 및 건당 규모가 근년 들어 크게 늘어난 것을 과연 ‘RP매각용 국채 확보’나 순수한 ‘시장안정화’로만 말끔히 설명할 수 있을까. 한은은 이런 합리적 의심을 세세하고 명확한 설명으로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통화정책 투명성을 위해서다.


관련하여, 미국 연준 역사는 "최선의 규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6.25전쟁이 심상찮게 전개되던 1951년 1월 말, 트루먼 대통령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원을 백악관으로 불러 전비조달용 국채발행에 따른 시장 매입을 요청했다. 그날 회의에선 어떤 결정도 없었으나, 백악관은 연준이 협조를 약속했다는 성명에 이어 대통령 서한까지 공표했다. 당시 FOMC 위원 중에는 연준 의장을 지낸 매리너 엑클즈가 있었다. 그는 대통령에 꿋꿋이 맞서기로 마음먹고 그날의 회의록을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당황한 정부는 연준 독립성을 공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재무부-연준 합의」(1951.3)다(리치몬드연준 자료).


71년 전, 올곧은 기개(guts)를 갖춘 한 FOMC 위원의 투명성 추구가 연준에게 통화정책 독립성을 선사했다. 그 절절한 울림이 오늘의 우리에겐 크고도 깊다.



김홍범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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