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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금융교육, 얼마큼 받으면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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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금융교육, 얼마큼 받으면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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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소비자원은 '2019 한국의 소비생활지표'를 발표했다. 조사 실시 이래 처음으로 금융이 의류를 제치고 식(식품ㆍ외식), 주(주거ㆍ가구)와 함께 3대 소비생활지표에 포함됐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3대 체계가 '식주금'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사모펀드 환매 중단과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태 등에서 보듯이 금융의 만족도는 조사 대상 11개 분야 중 최하위여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금융 당국이 곧 발표할 예정이라는 '금융 교육 종합 방안'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조치다. 이 방안은 생애주기별 금융 수요 및 그에 따른 중장기 교육 전략과 세부 과제를 제시하고, 고령층의 디지털 환경 적응과 청소년에 대한 불법 금융 피해 예방 등에 중점을 둘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초중등 과정에서의 금융 교육 의무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금융 교육의 타당성을 십분 인정하면서도 너무 교육만 강조되는 건 아닌지 마뜩잖고 불안하기도 하다. 금융 교육을 얼마큼 받으면 소비자들이 충분히 현명해질까?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아야 상장지수증권(ETN)이 상장지수펀드(ETF)나 주가연계증권(ELS)과 어떻게 다른지, 주택연금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사모펀드와 신탁의 운용 원리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자산유동화증권(ABS)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될까?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에서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라고 노래했는데, 우리는 자기를 지킬 만큼 현명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금융교육의 바다 위를 날아야 할까?


경제학자 레이온후프트는 "현실세계는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정말 단순한 사람들'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텐데도 전통 경제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 너무나 머리 좋은 사람들'로 모델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적은 소비자의 현명해짐을 보장할 수 없는 금융 교육 강화 주장에도 상당 부분 들어맞을 수 있는 명언이다. 대니얼 카너먼 이래 로버트 실러, 리처드 세일러 등이 연이어 노벨상을 받으면서 이제 주류 경제학의 의미 있는 대안으로 등장한 행동경제학의 통찰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금융 교육도 좋지만 인간의 비합리성과 직관의 오류를 고려할 때 금융 자문과 금융 감독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영국 등 금융 선진국은 이런 행동경제학 원리에 따라 교육보다는 금융회사의 판매 전략을 수정하도록 하고,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과 같이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 전략 등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이랬으면 좋겠다. 금융 상품 종합안내소가 있어서 위험과 수익의 정도에 따라 금융회사의 상품들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각 상품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이 제공되면 좋겠다. 굳이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아도, 지루하고 어려운 교육을 받지 않아도 소비자 맞춤형의 상품을 적시에 추천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애널리스트가 증권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듯이 언론이나 공공적 기관이 공익 차원에서 금융 상품에 대한 자문과 추천 보고서를 발표해주면 좋겠다.


몽테뉴는 재산과 관련해 자신의 인생을 3단계로 나누고, 처음 1단계인 30년은 물려받은 재산을 쓰기만 했고 2단계인 약 10년은 적극적으로 축적했다고 했다. 그런데 소비와 축적 모두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했다며 3단계에서는 욕구를 최대한 줄이고 소박하게 살면서 불후의 걸작 '수상록'을 썼다. 세상에는 금융 교육만큼 중요한 다른 것도 많다. 몽테뉴처럼 거창한 치타델레는 아닐지언정 나도 4평짜리 오두막, 자기만의 방에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더 근본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 이를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교육보다는 단순하고 쉬운 금융 자문을 받고 싶다. '교육에서 자문으로', 30년간 금융계에서 일하고 금융법을 연구하며 가르쳐온 사람의 소망이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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