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카메라 안에서 문화유산을 거꾸로 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역사가 있는 풍경’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캄캄한 방 한 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쪽 벽에 외부의 풍경이 거꾸로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사진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원리로, 오늘날 사용하는 카메라의 조상으로 불린다.

이명호 사진작가는 이 장치를 활용해 우리 문화유산을 거꾸로 보는 이색 전시를 펼친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프로젝트 ‘역사가 있는 풍경’이다. 25일부터 숭례문, 울릉도와 독도, 광화문 광장, 경복궁에서 차례로 한다.

가로 6m, 세로 3m의 카메라 장치에 들어가면 피사체가 거꾸로 나타난다. 관람자가 렌즈 구조물 내부 유리판에 반투명 종이를 붙인 뒤 상하가 뒤집어진 사물을 그릴 수도 있다. 이 작가는 “문화재를 교육적이고 유희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했다”고 했다. “카메라 옵스큐라에서는 유리에 상이 뒤집혀 맺히며,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흐릿해져 몽환적이면서도 복고적인 이미지가 연출된다”며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나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문화재 조사와 연구, 보존, 복원에는 기록이 중요하다. 기록 장치인 카메라로 연구소의 시대적 기능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카메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체험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숭례문에서 내달 4일까지 운영된다. 울릉도와 독도에서는 내달 17일부터 27일까지 설치된다. 장소는 독도가 잘 보이는 안용복기념관 마당이다. 독도의 날인 내달 25일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지닌 자연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강연회도 열린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11월6일부터 16일까지, 경복궁에서는 11월18일부터 29일까지 각각 만날 수 있다.

연구소는 전시 참가자들이 제작한 사진·영상·그림을 공모해 시상한다. 수상작은 광화문 광장에 전시한다. 렌즈 없이 작은 구멍으로 촬영하는 카메라인 핀홀카메라 만들기 체험도 진행한다. 문화재를 찾고 보고 찍고 그리는 과정에서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자는 취지다.

한편 이날 최 소장은 연구소의 주요 사업을 발표했다. 2023년 김해 봉황대공원 인근에 준공하는 가야역사문화센터 설계와 초경량 드론을 활용한 독도 조사 등이다. 올해 불발된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조사에 대해서는 “11월에 고려사학회와 공동 개최하는 학술심포지엄에서 지난해 조사 성과를 공개하고, 남북 문화재 교류 가능성을 모색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