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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가짜 버스 정류장/조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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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노선들이 지팡이를 짚은 채 졸고

기다림은 찬송가 4절처럼 지루하게 반복되고

허리 구부러진 바람만이 이따금

허옇게 센 구레나룻을 기웃거린다.

이곳에서 가족은 읽다 만 책 속의 책갈피처럼

어딘가에 꽂혀 있는 것이어서

꺼진 시동이 만들어 낸 막다른 골목.

역주행하는 그리움 하나 있어

닳은 무릎의 연골을 맞대고 버스를 기다린다.

연착된 죽음은 때때로 교차로에

마모된 타이어 자욱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토록 막다른 그리움 하나 있어

돌아가야 할 집은 편도행뿐이다.

기억은 없어지고 그리움의 습관만 남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불러 보는 이름.

어떤 정거장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돌아오기 위해 존재한다고


신내림 같은 햇살을 받으며

이교도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어머니



[오후 한 詩] 가짜 버스 정류장/조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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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시 뒤에 적어 둔 바를 그대로 옮기자면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노인 요양 시설에서는 치매 노인들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일반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특성을 발견하고 노선이 없는 가짜 버스 정류장을 만들어 노인 실종과 배회 증상을 감소시켰다고 한다. 이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들은 바에 따르면 길을 잃은 아이는 자꾸 북쪽으로 걸어간다고 한다. 어쨌거나 둘 다 안쓰럽고 애처로운 얘기들이다. 문득 나가 본 버스 정류장엔 강아지풀들이 시든 고개를 말갛게 흔들고 있었다. 어머니, 부디 멀리 가지 마셔요.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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