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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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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몇 걸음만 걸어도 구슬땀이 흐르는 무더위에 긴 팔 티를 입고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 온종일 뙤약볕을 맞아야 하니 피부를 보호하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배달 오토바이 라이더인 그는 기자가 지나가던 그 때 왕복 2차로 이면도로에서 유턴을 하다가 차로변에서 막 출발하는 자동차에 오른 다리를 툭 치였다.


라이더는 일순간 중심을 잃었으나 이내 왼 다리를 뻗어 오토바이를 떠받쳤다. 자동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라이더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반대차로를 팔로 가리켰다. '미안하긴 한데, 네가 급하게 유턴을 해서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라이더는 그냥 가겠다는데 왜 번거롭게 말을 시키느냐는 식으로 손짓을 몇 번 하고는 떠나버렸다.


라이더는 개인사업자다.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라이더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등에 따르면 이들 10명 중 3명은 교통사고 경험이 있다고 한다. 자기 피해를 보상받고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는 유상운송 종합보험에 들면 마음이 좀 놓일텐데 1년에 최대 800만원 정도로 비싸서 언감생심이다. 산재보험? 고용보험? 사각지대 중의 사각지대가 라이더의 세계다. 라이더유니온은 27일 서울의 한 배달앱 업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일방적 계약변경에 따른 시급 감소 ▲인력난에 따른 노동강도의 증가 ▲사실상의 위장도급 등을 규탄하고 단체교섭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자기들도 근로자로 여겨달라는, 어찌보면 소박한(?) 요구다.


배달앱 업체와 라이더 사이에 있는 가맹점 사장님들 사정은 어떨까. 지난 4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접수된 피해사례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배달앱에 가입한 치킨집 사장 A씨는 고객의 컴플레인을 받고 그 고객을 직접 방문해 사과한 다음 후속조치를 했다. 얼마 뒤 A씨에게 날아든 건 배달앱 업체의 계약해지 통보였다. 임의로 고객을 접촉하는 행위가 계약 위반이었단다. A씨는 계약 당시 계약 위반 사항을 통보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배달앱에 가입한다는 건 배달 위주로 사업계획을 수립한다는 뜻이다. 계약이 일방해지되면 매출이 어찌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배달앱 가맹점 500여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2곳 중 1곳은 반품이나 배송 관련 서면 기준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있더라도 대부분 가맹점 측에 책임을 지우는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전체의 60% 가까이는 "가맹 수수료가 너무 높다"고 토로했다.



배달앱 서비스는 온ㆍ오프라인 연계(O2O) 방식의 대표적인 플랫폼 사업이자 벤처창업의 산실로 주목받는다. 배달앱 업체 대표들은 혁신의 성공사례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정관계 고위인사들이 보는 앞에서 강연을 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무슨무슨 포럼 같은 기구의 대표 자리를 도맡는다. 플랫폼은 사회의 자산이다. 누구를 위한 플랫폼인지, 누구를 위한 혁신인지 궁금하다. 저 짙은 그늘을 걷어내려는 노력이야말로 혁신의 완성이 아닐까.

[초동여담]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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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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